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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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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봄

게재 2021-03-21 18:24:55
이용환 문화체육부장
이용환 문화체육부장

'불교의 나라' 미얀마에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1995년 미국에서 제작된 존 부어먼 감독의 영화 '비욘드 랭군' 때문이었다. 1988년 어린 아들과 남편을 사고로 잃은 뒤 여행을 위해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를 찾았던 미국 의사 로라 보맨. 수도 랑군의 호텔에서 그가 목격했던 학살은 5·18민주화운동을 겪었던 우리에게 비슷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숨지고, 옥에 갇혔는지를 보여주는 엔딩 자막과 군사정권의 학살에 맨손으로 맞서는 버마 민중의 뜨거웠던 민주화 열기도 우리에게 남의 일이 아니었다.

미얀마는 불교와 은은한 미소의 나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전체 인구의 90%가까이가 불교를 믿고 '제2의 킬링필드'로 불릴 만큼 대규모 학살이 벌어졌던 당시 '미소를 잃지 않고 시위대 앞에 의연하게 섰던' 아웅산 수치도 미얀마의 상징이다. 바간 불탑이나 미얀마의 최고 불교 성지로 손꼽는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 제2의 도시 만달레이의 마하간다용 수도원 등 '황금 불탑' 들도 산재해 있다. 6·25전쟁 때 우리나라에 쌀을 지원하고 1983년에는 버마 수도 랑군에서 아웅산 폭탄테러가 일어나는 등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외세의 침략으로 점철된 역사도 우리와 비슷하다. 11세기 중엽 어렵게 통일 국가를 세웠던 바간 왕조는 수많은 사원을 건립하고 불교 문화를 발전시켰지만 1287년 몽고를 지배한 칭기스칸에 멸망한다. 이웃나라 태국과의 갈등도 1000여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있다. 인도차이나를 노리던 영국과 전쟁을 치른 끝에 식민지로 주저 앉았던 아픈 기억도 갖고 있다. 1962년에는 네윈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현대사를 깊은 수렁에 빠뜨렸다.

미얀마 민 아웅 흘라잉 군정 최고사령관이 지난 달 1일 쿠데타를 일으킨 뒤 미얀마가 미증유의 아픔을 겪고 있다. 군경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면서 사망자도 3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한 유혈 탄압을 중단하라는 국제사회의 경고와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수치가 "유혈사태가 계속되면 내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내놨다. 불교를 사랑하고 은은한 미소가 아름다운 미얀마에 봄은 요원한 것일까. 고통받는 미얀마에 하루빨리 따뜻한 봄이 찾아오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미얀마 2021은 광주 1980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