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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16> 사진예술(Photograph art)의 시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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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16> 사진예술(Photograph art)의 시간성

게재 2021-03-07 14:02:38

인터넷 보급과 미디어의 개인 활용(1인 미디어채널) 시대의 도입은 우리에게 많은 이미지의 홍수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팬데믹 이후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현대 사회의 대중예술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회학적 측면에서도 집단 공동체 인식보다는 초연결시대의 (개인) 사적인 영역에 침투되고 있음을 느낀다. 대중예술 속 미술은 공부하거나 전공하지 않더라도 다양한(가상 또는 현실)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전시회를 할 수 있고 자신만의 세계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개인 SNS(Social Network Service)을 통해서 한 장의 사진으로 자신의 정체성 또는 개성 등을 표현하는 세대들은 점차 많아지고 있다.

많은 이미지들 중 '사진(Photo)'의 초시(初試)는 순간의 기록, 한 순간의 시간을 붙잡는 기술매체로 시작되었다. 특히 대중 사진은 사진만이 가진 기능적 측면이 작동하며 타자에게 즐거움을 전달하기도 했다. '사진(Photo) 은 개념으로 과학인 동시에 예술이기도 하고 상반된 복합성으로 사진의 예술성을 논할 때 이제까지의 전형적인 예술개념과 맞지 않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진이 회화의 복제수단(複製手段)으로 발명되었다는 오해를 오랜 시간 받으며, 예술로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후 19세기까지 오늘날 사용하는 카메라의 원형인 '카메라 오브스큐라(camera obscura: 어둠상자)'를 활용하여 그림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한 복제도구 정도로 사용하였다. 더불어 판화가 활용되면서 판화기술은 18세기에 이르러 정점에 이르렀고, 이는 근대 사회의 성립과 함께 등장한 부유층의 회화(繪畵) 소유 욕구에 호응하는 풍토였다. 이러한 시대적 풍조 속에서 보다 더 정밀하고, 다량의 복제가 가능하면서도 값이 저렴한 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부유층은 매우 환호했다. 이렇듯 사진은 새로운 판화와 같은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진기술이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데 감탄하면서도 정신적 예술이 아니라 하나의 기계적 결과물이라는 것에 혐오감을 느꼈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는 감상자가 먼저 사진작가의 의도를 이해한 뒤 자신의 문화와 지식을 바탕으로 이에 동의할지 거부할지를 결정하게 되며, 사진은 다섯 가지 기능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정보 전달의 기능, 예술의 기능, 충격의 기능, 의미의 기능,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기능이다. 이러한 기능이 작동할 때 감상자는 자신의 지식이나 문화에 바탕을 둔 쾌락을 느끼게 된다는 의견이었다.

[좌, 사진1.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사진]
[좌, 사진1.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사진]

[좌, 사진1.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사진]

[우, 사진2.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의 사진]
[우, 사진2.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의 사진]

[우, 사진2.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의 사진]

예술은 바로 오리지널 자체이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로 새롭게 등장한 사진 복제기술은 '지금', '여기' 밖에 없는 일회성으로 오리지널 개념을 깨뜨렸고 근현대 사회의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 의식과 직결되었다. 이런 점에서 사진은 현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하나의 일회성을 본질로 삼은 예술의 특수성이 예초부터 존재했다. 사진기술의 등장은 또한 대중의 예술에 대한 정신성에 타격을 주었으며, 현대 복제품의 범람은 오리지널에 대한 관심이 무뎌지는 경향을 낳았다. 사진의 등장 이후 영화 ·레코드 ·텔레비전 등 기계기술은 모두 예술의 복제 수단이면서 오늘날에 있어서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새로운 현대예술로 제자리를 굳혔으며, 지금은 사진이 다만 예술의 복제가 아니라 복제예술(複製藝術)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사진도 하나의 과학이기 때문에 과학적 특성은 당연히 종래의 예술에서 찾아볼 수 없는 표현상의 분야를 개척하여 새로운 표현성의 리얼리티를 확립해 나갔다. 또한 사진에 의한 기록적인 재현의 영상은 사물에 대한 인간의 기억 애매함을 충분히 일깨워주며, 또한 흐린 기억의 모호함이 겹쳐서 생긴 사물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도 깨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사물과 인간관계, 즉 사물에 대한 의미의 부여는 언어적 기호에 의해 이루어졌고, 언어는 상투적이었으며 사물의 의미가 오해되기 쉬웠다. 그러므로 사진이 순수 객관적인 본 모습을 드러낼 때에 인간과 사물의 잘못 굳어진 의미는 흔들리고, 부정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은 이처럼 언어와 같은 개념적 기호성은 아니지만, 새로운 의미들을 경신(更新)시키는 기호로서의 본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후반 현대 사진의 선구자이자 거리 사진가(street photographer) 의 대부라 불리는 미국 사진작가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1928~ ) 은 처음 회화 작업의 연장으로, 추상적 사진을 시도하면서 사진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는 라이카 필름카메라(Leica film camera)를 가지고, 스냅 샷으로 셔터찬스를 우선시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초점이 맞지 않고(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노출의 과다 같은 기술적인 것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그는 현실적인 사실을 그대로 사진에 담으려면 그 사실에 공격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대상과 사진기를 적극적으로 결부시키는 데에 클라인의 독자적인 영상미학이 구축되었다. 그리하여 도시별 일상의 모습을 찍었고, 다양한 나라 언어로 번역된 작품집을 내면서 현존하는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거듭났다. 그는 "나는 상당히 고의적으로 실제 있었던 것을 반대로 뒤집었다. 피사체의 화면상 위치 조절을 무시하고, 카메라를 우연과 우발적 사건에 맡기면서, 사진 이미지가 해방되리라고 생각했다. 오직 카메라만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다. 카메라에는 아직 활용되지 않은 많은 가능성이 있고, 바로 그 사이에 사진이 존재한다. 카메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다." 고 말하며 사진에 대한 확장성을 강조하였다.

[좌, 사진3.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_May Day Parade Gorki Street Moscow_1961]
[좌, 사진3.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_May Day Parade Gorki Street Moscow_1961]

[좌, 사진3.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_May Day Parade Gorki Street Moscow_1961]

[우, 사진4.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_Antonia Simone Barbershop_New York_1961]
[우, 사진4.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_Antonia Simone Barbershop_New York_1961]

[우, 사진4.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_Antonia Simone Barbershop_New York_1961]

결국 사진예술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사진이 '죽을 것'과 '이미 죽음'이라는 시간성과 과거의 '그것이-존재-했음'에 있다는 것을 촬영된 대상으로 카메라 앞에 (과거)존재했고, 현재는 대상과 순간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즉 '사진을 보는 것'은 현재와 접촉하는 행위이고, 인류 역사에 등장한 '새로운 시간성의 의미이며 현상'이라는 뜻이었다. 더불어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의 사진은 더 이상 사진은 대상에 대한 사실만을 주장하지 않고, 감정까지도 호소하며 전달하는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사진은 우리의 안과 밖,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대중적 예술로 일상에 스며들었고, 이미지의 상징과 비(非)상징성, 소통과 불(不)소통으로 다양한 의미로 남았다. 사진은 더 이상 예술을 위한 기술적 도구가 아닌 인간의 삶을 위한 또 다른 창문이자, 보고자하는 피사체와 감정을 재조명하기 위한 방식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 발터 벤야민,『사진의 작은 역사』, 최성만 옮김, 길, 2007년

- 롤랑 바르트,『밝은 방』,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년

-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외,『20세기 사진 예술 20th Century Photography』, 마로니에북스,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