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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많이 당황하셨어요?
  • 입력 : 2020. 12.28(월) 14:55
  • 김해나 기자
김해나 사회부 기자
"공무원 아니고 '공무직 직원'입니다. 기사 쓰실 때 정확히 표현해주세요."

최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 '광주 서구 공무원 불법 주정차 과태료 면제 특혜'와 관련해 받은 전화 내용 중 일부다. 내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선 다급함이 느껴졌다. 빠르고 두서없이 뱉어내는 말을 이해하는 데엔 시간이 한참 걸렸다.

전화 내용은 "논란이 된 일은 모두 공무직 직원들이 벌인 것이니 기사에 '공무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지난 14일 광주 서구에서 불법 주정차 단속 업무를 하는 공무직 직원들이 단속 자료를 임의로 삭제해 지인 등에게 과태료 면제 혜택을 줘 파문이 일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서구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2018년부터 지난달 18일까지 3년여간 과태료 부정 면제와 관련한 자체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구에 따르면 불법 주정차 과태료 처리 내용 중 140건의 과태료가 부당한 방법으로 무단 면제됐다. 직·간접적으로 과태료 면제를 요청한 이들 중에는 5급에서 9급까지의 공무원이 다수 포함됐다.

서구의회 의원 2명(3건), 5급 이상 과장급 공무원 8명(10건), 6급 이하 공무원 60명(82건), 공무직·기간제 노동자 16명(20건), 퇴직 공무원 14명(18건)으로 밝혀졌다.

총 110건이 전·현직 공무원의 단속 처리 내용이었다. 앞서 강조했던 '공무직 직원'의 면제 건은 140건 중 단 20건 뿐이었다.

이 같은 자체 감사 결과를 놓고 보면 기사에 '공무원'이라는 단어를 써도 무방할 듯하다.

잘못을 무마하기 급급했던 그들의 행태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공직자로서 '청렴'의 본보기가 돼 시·구민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지적 기사가 나올까 노심초사 하는 모습에 기가 찰 노릇이다.

아울러 이번 서구의 감사 결과 발표는 지난 3년여간의 것이다. 좀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 많은 이들이 연루돼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여론이 악화하자 갑자기 감사 결과를 내고 과태료를 재부과한다는 것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다.

단순히 사실을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급한 불을 끄려다 오히려 불씨를 키우는 일은 없길 바란다.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