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동지와 성탄절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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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동지와 성탄절 묵상
  • 입력 : 2020. 12.17(목) 11:09
  • 편집에디터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인 '동지(冬至)'를 맞아 경남 남핵군 이동면 용문사에서 신도들이 팥죽을 쑤고 있다. 뉴시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삼척동자도 알 만한 황진이의 시다. 그녀의 격조와 웅숭깊음을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겠는가만, 이 촌부가 알 수 있는 것은 연모의 정이 깊을수록 겨울밤이 길다는 점 정도다. 임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뿐이겠는가. 코로나 시국이 깊어질수록 우리들의 겨울밤도 길고 깊어만 간다. 황진이는 왜 섣달을 표제삼지 않고 동짓달에 심사를 투사하였을까?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 동지이고 동짓달이기 때문이다. 1년 태양 황도의 위치를 15도씩 나누어 270도에 이르렀을 때가 동지다. 대칭점에는 하지가 있고 관련된 풍속이 오월 단오에 포섭되어 있다. 예로부터 하선동력(夏扇冬曆) 곧 여름에는 부채를 선물하고 겨울에는 달력을 선물했다. 여름 선물 단오부채는 축귀나 재액의 기능으로 읽고 겨울선물 동지달력은 이날을 기점 삼아 새 출발을 한다는 뜻으로 읽는다.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하는 것이나, 동지팥죽 한 그릇 먹어야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생각들도 이 풍속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래서다. 황진이가 노래한 동짓달은 임을 기다리는 가장 긴 밤이기도 하지만, 부재한 님과 오실님에 대한 전환점, 그 허리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이 시를 부재의 연민과 비애로 읽지 아니하고 기다림과 희망의 정조(情操)로 읽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심 있는 동지하례 풍속

동지의 기원을 '형초세시기'등을 인용해 중국 공공씨의 아들 망나니가 동짓날 죽어서 역신이 되었다는 고사로 설명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다. 중국 주나라의 설날이 11월이었고 이를 자월(子月)로 불렀다는 맥락은 참고 가능하다. 한해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양력 12월 22일을 전후해 동지가 배치된다. 음력으로 따져서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기)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 올해 동짓날은 12월 21일이다. 음력으로 11월 7일이므로 애동지에 속한다.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팥시루떡을 해서 먹는다. 팥죽은 노동지에 만들어 먹는 것이고 중동지에는 지역에 따라 시루떡을 하거나 팥죽을 쑨다. 동지두죽(冬至豆粥), 동지시식(冬至時食)이라고도 한다. 팥죽은 먹기도 하지만 솔가지에 묻혀 대문간이나 문설주에 뿌린다. 나쁜 것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다. 붉은색을 음기(陰氣)를 쫓는 양색(陽色)이라 한다. 팥죽에 넣는 단자(團子)를 우리말로 새알심 혹은 옹심이라 한다. 새알심을 자기 나이 숫자에 맞춰 먹는 풍속이 있다. 일꾼들은 팥죽 아홉 그릇을 먹고 아홉 짐을 진다. 지역에 따라서는 동지불공을 드리러 절에 가기도 하고 전염병이 돌았을 때는 팥죽을 우물에 뿌리기도 한다. 팥이 붉어서이기도 하지만 실제 단독(피부가 붓고 열나는 병)이나 설사, 해열, 종기, 임질, 산전산후통, 수종, 진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동지부적을 만들어 붙이기도 한다. 예컨대 뱀 사(蛇)자를 써서 거꾸로 붙이면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것이다. 입춘에 입춘첩을 써서 붙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주목할 것이 더 있다. 동지하례로 버선이나 신발을 선물하는 것과 상가집에 팥죽을 한 동이씩 조문하는 풍습이다. 나는 일찍이 '산자와 죽은자를 위한 축제'라는 책에서 상례(喪禮)의 심원을 분석한 바 있고 시대별로 재구성되어 온 예법의 이면에 포진된 거듭남의 의미들을 주장해왔다. 기회를 만들어 따로 설명하겠지만 상가집에 보내는 팥죽의 유감주술적 맥락 또한 거듭남과 새로 태어남 즉 동지의 의미로부터 파생되었다는 점 부기해둔다.

동지하례의 버선과 성탄절의 양말

동지하례로 버선을 선물하는 동지헌말(冬至獻襪)은 풍요와 다산의 의미를 갖고 있다. '헌종실록'등에 신발과 버선을 (동지에) 지어 올린다는 기록이 있다. 형편이 허락하면 며느리가 시댁 여자들에게 옷을 지어드리며 풍요다산을 기원한다고 해서 풍정(豐呈)이라고도 한다. 새 버선을 신고 길어지는 그림자를 밟으면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최덕원은 음기가 다하고 양기가 커지기 시작하는 날이 동지이므로 버선이 가지고 있는 풍요다산의 유감주술적인 뜻이 있다고 해석했다. 결국 시작이라는 뜻 아니겠는가. 실제 고대인들은 동지를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이라고 믿었다. 주역의 복괘(復軌)로 설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4괘 중 24번째로 초효만 양효이고 나머지 다섯은 음효로 구성되었다. "위에서 극에 달하면 아래로 내려와 다시 생한다"고 풀이한다. 얼어붙은 지표 아래서 새로운 생명이 부활하고 있다는 뜻이다. 음이 극에 이르렀는데 오히려 양의 시작이라고 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동지와 성탄절은 유사한 측면이 많다. 고대인들이 동짓날을 태양이 부활하는 날로 인식했던 것처럼 성탄절도 사실은 태양절로부터 비롯된 날이다. 성탄절을 제2의 부활절이라고 하는 것은 태양의 부활이라는 의미를 포섭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산타크로스의 양말은 어디서 왔을까? 공교롭게도 성탄절에 산타할아버지가 오실 때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시니 말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동지하례의 버선을 떠올릴 수 있다. 혹자는 굴뚝을 타고 내려온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우연히 난로에 걸어둔 양말로 들어왔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짓날 버선과 성탄절의 양말은 사실 알고리즘이 같다. 굴뚝이 불과 연기의 통로라는 점 주목한다. 장독대에 거꾸로 붙이는 버선도 실제는 바닥의 습한 기운을 햇볕에 말린다는 기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불가피하게 '방콕'을 해야 하는 지금, 성탄절의 의미를 동짓날과 더불어 살펴볼 일이다. 동지가 한 해 시작의 기점이 되는 것처럼 혹은 성탄절을 아기예수 탄생의 기점으로 삼은 것처럼 올해 성탄절은 코로나 척결의 기점이 되기를 바란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 베어두었다가 코로나 사라진 어느 봄날 서리서리 펴야겠다.

남도인문학팁 <성탄절이 된 동지절>

프레이저가 보고한 '황금가지'의 사례를 들어, 성탄절의 기원과 동지절을 공부해본다. 복음서에는 그리스도의 탄생 날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후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이 1월 6일을 성탄일로 간주하여 기념하였다. 서방교회들은 3세기 말이나 4세기 초에 이를 12월 25일로 옮겼다. 태양의 탄생을 기념하고 경축의 표시로 등불을 밝히는 이교도의 풍습을 수용한 것이다. 때문에 1월 6일까지 보름 정도 등불을 밝히는 관습이 성행하게 되었다. 성탄절의 이교도적 유래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기독교 형제들에게 그 엄숙한 날을 이교도같이 태양 때문에 섬기지 말고 태양을 만드신 그분 때문에 섬기도록 권유한 대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회는 이교도의 신앙을 '태양'에게서 '의인의 태양'이라고 일컫는 즉 창시자의 생일로 옮겨오게 된 것이다. 이 즐거운 날을 맞이해 등불이나 불을 피운 것이 확실하다. 고대의 동지절 불놀이는 잉글랜드 사람들이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는 '성탄절 장작불'과 같다. 성탄절 축제는 이러한 옛 태양제전을 기독교식 명칭으로 연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되었든 성탄절은 한 달 간의 대림절 기간을 거쳐 비로소 맞이하는 아기예수 탄생의 날로 정착되었다. 종교나 관념이 다름에도 동짓날이나 성탄절은 음기의 끝이며 양기의 시작이라는 점 불문가지다. 비대면의 시대, 비록 모이지는 못해도 동지팥죽 한 그릇 나누는 연말 되기를 소망한다.

동지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동지팥죽 새알 빚기를 하고 있다. 뉴시스

동지를 앞두고 부산 동구 부산진역 광장에서 부산적십자사 자원봉사원과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임직원 등이 노숙인과 홀몸노인 등 300명에게 대접할 동지팥죽에 넣을 새알을 빚고 있다. 뉴시스

성탄절을 앞두고 1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광주시기독교교단협의회 주관으로 '2020 빛고을 성탄트리 점화식'이 열린 가운데 형형색색 오색불빛이 온누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나건호 기자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