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쓴 문장과 문장이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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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쓴 문장과 문장이 그린 세상
  • 입력 : 2020. 10.15(목) 15:59
  • 박상지 기자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백승종 | 김영사 | 1만4800원

오늘날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글을 읽고 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고 가는 메일, 각종 SNS 메시지, 넘쳐나는 인터넷 뉴스 등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장은 양적인 면에서 역대 최고일 것이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는 좋은 문장을 쓰고 있을까. 그 전에, 좋은 문장이란 과연 무엇일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학자 백승종 교수의 500년 조선사를 가로지르는 명문장 이야기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저자 백승종 교수는 정치·사회·문화·사상을 아우르는 통합적 연구, 통사와 미시사를 넘나드는 입체적 접근으로 다양한 주제사를 집필해왔다. 국내 역사학계에 미시사 연구방법론을 본격 도입한 선구자로, 30여 년간 동서고금의 문장을 두루 탐독해온 그가 이번에는 '문장의 왕국' 조선을 풍미한 명문장에 주목해 조선 최고의 문장을 엄선하고 명문장가들이 전하는 지혜와 통찰을 조명한다.

시대의 조류가 바뀌면 문장에도 파란이 일었고, 때로는 문장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글로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문인부터 새 시대의 문장으로 성리학 바깥세상을 꿈꾼 신지식인까지, 역사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구한 편지 한 장부터 붓을 꺾지 못해 고난을 자초한 절개 높은 상소문까지. 좋은 문장을 음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500년 조선사를 따라 문장이 담은 시대의 풍경과 시대가 탄생시킨 문장가의 사연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이 책은 조선 500년을 관통하는 역동적인 문장의 역사와 그 행간에 숨은 조선의 풍경을 생동감 있게 그린다. 1부 '시대의 문장'에서는 여말선초의 전환기에 이색이 무거운 붓을 들어 제자와 정적에게 보낸 편지, 글로 새 나라를 설계한 경세의 문장가 정도전, 문장의 힘으로 국가의 질서를 확립한 세종과 그가 북돋은 실용적 글쓰기의 대가 권채와 박팽년을 통해 시대적 사명이 문장가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본다. 2부 '문장의 시대'에서는 훈구파의 거두이자 문단의 거장 서거정이 아내와 술잔을 기울이며 남긴 소탈한 한시, 옛 문인의 초상화를 벗 삼은 허균의 우정담, 난세를 외면하지 못한 문장가 권필과 백인걸의 피어린 상소문, 티끌세상을 버리고 유불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김시습,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과 유성룡의 절절한 우의, 한중 공동 프로젝트를 기획한 홍대용 등 문장에 실린 세상의 다양한 얼굴을 만난다. 시공을 초월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문장들은 인생의 나침반이자 의지처가 되어줄 것이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