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에 잠긴 어른아이가 주는 뭉클한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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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사념에 잠긴 어른아이가 주는 뭉클한 공감
포스트코로나 8〉성혜림(33)작가||졸업작품전에서 첫선 보인 캐릭터에 감정이입||사회 첫 발딛는 예비사회인의 두려움 그려
  • 입력 : 2020. 08.17(월) 16:31
  • 박상지 기자

성혜림 작 '생각이 많은 어른은 겁이많다'

성혜림 작 '응시'

청춘이기에 감내해야 할 아픔은 결코 만만치 않다. 부단히 스펙을 쌓고 취업관문을 두드리고 사회에 적응하고 있지만, 미래는 여전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 알 수 없는 불안에, 청춘들의 오늘은 여전히 버겁다. 자신에 대한 성찰의 기회도, 세상을 탐험할 기회도 앗아가버리는 현실 때문에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지 못하는 청춘들은 오늘도 불안과 나태를 오가며 황금 같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성혜림(33)작가의 작품에는 한 아이가 등장한다. 어딘지 불안한 미성숙한 신체구조와 대조적인 지긋이 눈을감은 사색적인 눈매가 인상적이다. 세상을 응시하는, 쓸쓸함이 가득한 눈빛의 아이에게 필요한 건 온기 가득한 격려다. 사회라는 풍파에 첫 발을 내딛은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살아남기: 사회 첫 발 내딛던 순간의 감정, 캐릭터로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부모님은 전업작가의 길 보다도 직장인이 되길 원하셨어요. 막상 취직을 준비하다 보니 이유모를 두려움이 밀려왔죠. 세상에 나가는것이 무섭고, 여전히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성 작가만의 지긋이 눈을 감고 사색에 잠긴 아이 캐릭터는 이렇게 탄생했다. 어른이라는 것, 막상 겪어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그 묵직함이 그렇게 불안하고 두려웠다고 한다. 성 작가의 불안한 심리는 '아이'라는 캐릭터에 고스란이 반영됐다. 대중에게 첫 선을 보였던 때는 대학 졸업작품전에서였다.

"졸업작품전에서 평가가 괜찮았어요. 초기작들은 거의 저의 자화상이었어요. 몸은 자랐지만 마음 속에 어린아이가 자리잡고 있는 내 모습을 그린건데, 주변의 청춘들이 모두 공감을 하더라고요. 60대 관람자의 '그림에서 내 모습을 봤다'는 방명록을 보고, '어른으로서의 책임감과 두려움'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어요."

졸업 후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한 직장생활은 성 작가가 미리 겁냈던 두려움과 맞서게 됐던 시간이었다. 인간관계에 치이고 업무에 치이면서도 쉬 붓을 내려놓지 못했다. 마침 졸업작품 전 이후 전시가 꾸준히 이어졌던 터라 1년여간의 직장생활은 미련없이 정리할 수 있었다.

●작업하기 : 8년간 선보인 캐릭터, 앞으로도 지속

"졸업작품전에서 선보였던 캐릭터가 저의 자화상이었다면, 직장생활을 끝낸 후 작업하기 시작한 캐릭터는 사회로 진입하는 젊은 세대들이에요. 눈을 감거나 반쯤 감은, 무표정 하지만 어딘지 모를 슬픔을 지닌 아이를 통해 사회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아직은 알고싶지 않은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1년이라는 길지 않은 직장생활이었지만, 막상 직장인이 돼 보니 내 마음같을 그들을 작품에 옮겨야겠구나 생각했죠."

'내 마음 다치지 않게' '맞서다' '자꾸 어디론가 숨고싶어' '지친 나를 놓아주어야 할 때' '정답은 없다' '선택회피''혼자이고 싶지 않은 나를 위해' '오늘도 얼마나 많은 이들을 지나쳤는가' '내일의 나에게 묻다' 등 작품 한점 한점의 제목은 고단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8년이상 '어른아이' 캐릭터를 소재로 작업을 진행 중 이지만 작업 소재를 변경할 계획은 없다. 누군가의 외모를 떠올리며 만든 캐릭터는 아니지만 20개월 딸의 외모가 점점 캐릭터와 비슷해져 가는 모습이 신기해 캐릭터에 더욱 애정이 간다. 하지만 그 보다도 성 작가가 캐릭터에 변화를 줄 수 없는 이유는 따로있다. 예전보다 더 바빠진 전시일정을 보면 우리 사회는 위로와 공감이 아직 필요한 곳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살아가기: 겁많은 아이가 아닌 희망잃지 않는 아이로

작품 재료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듯 하다. 그동안 작업했던 유화물감은 성 작가의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적합했지만 작가 이기 전에 '엄마'라는 점에서 유화물감은 결코 안전한 재료는 아니다.

"유화물감 성분이 임산부에게 해로워요. 임신 중에도 작업을 중단할 수 없어서, 비닐옷 입고 고글, 장갑끼고 작업을 했었어요. 딸이 지금 20개월인데, 곧 활동량이 많아지면 작업실에도 자주 드나들테고 유화물감에도 관심을 갖겠지요. 아이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작업 재료에 다양한 시도를 해 볼 계획입니다."

작품 주제에도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그동안의 작품이 미성숙한 아이를 안고있는 어른의 모습이었다면 앞으로는 성숙하고 희망을 잃지않는 용기있는 아이의 모습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 캐릭터를 통해 내면을 표현해 왔다면 향후에는 사회가 담고있는 상황을 캔버스 안에 담아 볼 예정이다.

"아직 제 작업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단계이죠. 작품의 주제와 재료에 대해 충분한 실험이 이루어져야 하는 시기인만큼 여러 시도를 계획중입니다. 안전한 재료에 대한 실험과 함께 작품 주제 역시 겁이많은 아이로 시작했지만 나이 먹을수록 성숙하고 용기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볼 예정입니다."

성혜림 작 '어른이 된 나는 어지러워'

성혜림 작 '소통'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