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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에 남은 시민군과 가까워지는 계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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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도청에 남은 시민군과 가까워지는 계엄군

1980년 5월26일

게재 2020-05-25 15:30:07
1980년 5월26일 계엄군이 시내를 재장악하기 위해 탱크를 몰고 화정동 돌고개를 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1980년 5월26일 계엄군이 시내를 재장악하기 위해 탱크를 몰고 화정동 돌고개를 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1980년 5월26일 월요일 아침 한때 비

"군인들이 몰려온다." 비상을 외치는 소리가 도청 안에 가득 울렸다. 꾸벅꾸벅 졸던 나와 병국이는 눈을 부릅 뜨고 총을 챙겼다. 사방은 어둠 뿐이었지만, 총을 쥔 병국이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전날 YWCA 강당에 모인 우리는 학생증을 반납했고, 도청에 들어가 지도부로부터 총을 받았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시민군이다. 신분증을 회수한 것은 혹시 전투 중에 누군가 죽는다면 그 사람은 시민군으로서 의롭게 싸우다 죽었으므로 여기에 있는 명단을 바탕으로 국가유공자임을 증명할 것이다." 그렇게 시민군이 된 우리는 도청 경비에 투입됐고, 두 시간 간격으로 암호를 전달받았다.

당장에라도 계엄군이 쳐들어 올 것 같은 긴장감에 숨이 조여왔지만, 다행히 날이 밝을 때까지 도청은 조용했다. "예비군은 도청으로 와 총을 들고 광주를 지켜주세요." 아침부터 도청 앞은 가두방송 차량과 대자보를 뿌리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지만, 시민들의 눈에는 비장함과 불안감이 섞여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하루 동안 두 번의 궐기대회가 열렸다.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그 대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무자비한 만행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너도 나도 총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우리 시민군은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안전을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궐기문에 쓰인 말들은 너무나 뜨거웠다. 시민군이라는 단어가 들릴 때마다 몸 안에 전기가 흐르는 기분이었다.

궐기대회가 끝나고 새롭게 합류한 시민군 수십 명이 도청으로 들어왔다. 시신을 확인하려 상무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이 우리를 향해 박수를 쳤다. 외신 기자회견을 마치고 온 지도부 대변인이 시민군 앞으로 왔다. "끝까지 싸울 수 있습니까?" 시민군 모두 힘차게 대답했다. "네!" 순간 식은 땀이 흘렀고, 계엄군의 군홧발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도청에 남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마지막 회의를 끝내고 나온 지도부가 시민군들 가운데 여성과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들에게 살아 남아 항쟁을 증언해 달라고 부탁했다. 시민들이 하나둘 담을 넘었다.

밤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괜찮냐?" 함께 보초를 서던 병국이가 날 흘깃 쳐다봤다. 두려워하는 모습을 들킨 것 같아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총을 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야 울 아버지 돌아가시고 말귀 어두운 어머니 밖에 안계신다지만, 넌 다르잖냐. 네 밑으로 동생들도 있고." 병국이가 주변을 돌아보더니 씩 웃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총을 뺏으며 말했다. "이 총은 내가 갖고 있을란께, 닌 울 어머니 밥은 잘 드시고 계신가 안부나 한번씩 물어봐주라."

난 끝까지 비겁했다. 병국이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담을 넘어 골목 쪽을 향해 달리는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시민군이 되어 끝까지 싸우겠다 다짐했던 순간들이 머릿 속을 스쳤다.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에 도청을 돌아볼 수 없었다.

집 앞에 도착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대문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다 방 안에 들어왔다. 쌔근쌔근 잠든 동생들을 내려다보는데, 다시 군홧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잠시 뒤 도청 쪽에서 커다란 총소리가 들렸다.

*5월26일 시간대별 일지

5시20분 - 계엄군, 화정동 쪽에서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

8시00분 - 시민수습대책위원들,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죽음의 행진 감행

10시00분 -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14시00분 - 학생수습위원회, 광주시장에게 생필품 보급 등 8개항 요구

15시00분 -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17시00분 -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 브리핑

19시10분 - 시민군,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공식 발표 어린 학생과 여성들을 귀가 조치시킴.

24시00분 - 시내전화 일제히 두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