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도전> 이종덕 금호화성(주) 대표이사 회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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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호남사람들
나의 삶, 나의 도전> 이종덕 금호화성(주) 대표이사 회장 (3)
대기업 공장 인수 '신뢰' 경영으로 성장||노조파업·원료중단 등 극복||IMF 외환위기 시기때도 탄탄
  • 입력 : 2020. 02.04(화) 13:18
  • 서울=강덕균 선임기자 dkkang@jnilbo.com
금호화성을 일으켜 세운 직원들과 함께 한 이종덕 회장.
 서울 마장동에 스펀지대리점을 설립했던 이종덕은 좀 더 큰 꿈을 품고 1980년 경기도 반월공단에 부지를 마련했고, 5년 뒤 이곳에 공장을 준공한 후 공장을 옮긴다. 상호도 '대종스펀지'로 바꿨다. 그러나 대기업이 주류를 이루는 이 업계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았다. 반월공단으로 옮긴 지 2년 만에 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공장은 멈춰 섰고 투자금액의 거의 절반을 날려 버렸다. 또 다른 좌절이었다. 몇 차례 실패를 경험한 그는 스펀지 사업의 전망이 밝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릴 적 꿈꿔 왔던 철강사업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당시 반월공단이나 인천남동공단에서 쏟아져 나오는 다량의 철 스크랩을 수집하여 H빔을 생산해야겠다고 마음먹고 1987년 경기도 시화공단에 공장터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에게 스펀지업과의 인연은 끝나지 않았다. 적자에 허덕이던 금호그룹 산하 스펀지 생산 공장인 PUF사업부가 M&A시장에 나왔고 인수의사를 타진해 왔다. 이 기업은 당시 8년간 150억원 이상의 적자를 내어 어려움에 처해 있었는데 이종덕은 '스폰지를 생산하는 다른 기업은 현상유지라도 하는데 왜 이 회사만이 유독 큰 적자를 보고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적정한 원료값, 원할한 판매, 원자재의 합리적 관리 등 관리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적자가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계부정, 원자재의 유실, 채권부실 등을 개선한다면 그렇게 많은 손해가 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스펀지 분야에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이종덕은 인수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을 직접 만났다. 박 회장은 "이종덕회장이 경영을 잘 한다는 얘길 들었다. 유능한 적임자를 만났으니 협상을 잘 해서 금호PUF 사업부를 꼭 인수해 가라"고 했다. 금호측의 첫번째 요구사항은 직원을 전원 인수해가는 조건이었다. 이종덕은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달라"고 요구해 받아들여졌고 인수 작업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금호PUF 노조원 65명이 파업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노조파업의 불을 끄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인수이후 사장으로 점찍어 놓았던 금호측 임원은 "터질 게 터졌다. 오히려 잘됐다"며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종덕은 '누구의 기업이 되든지 우선 파업을 수습하려는 자세를 갖는 게 경영자의 태도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는 '직접 경영을 해야 겠다'고 마음먹고 노조 파업이 있는 상태에서 1992년 인수를 감행했다.

 그러나 기존 원료업체에서 원료를 주지 않은 것이다. 인수 후 노조가 파업중에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영세 사업자라 판단하고 불안감에 원료 공급을 꺼려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위기에 봉착한 그는 수없이 많은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노조와의 피말리는 협상을 통한 설득으로 파업사태를 타결하고, 내수 위주의 구매 환경을 탈피하고 극복하기 위해 독일 등 해외로부터 원료를 구매하는 수입선 다변화 등을 통해 결국 회사를 정상화시켰다. 인수당시 미수채권 27억원도 1000만원만을 제외하고 모두 받아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일어서는 오뚝이 근성과 그동안 내면에 체득된 사업경험이 합치된 이종덕만의 뚝심이 진가를 발휘되었던 것이다. 대기업이 즐비한 국내 업체 가운데 대리점으로 출발해 생산업체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유일한 업체로 자리 잡은 '금호화성'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 탄생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시기에도 탁월한 경영기법과 임직원들의 단합된 힘으로 힘들지 않게 넘겼다. 현재 매출도 업체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금호화성과 함께 부산에 미원스폰지총판 (현 금호화성 부산지사)을 창업해 수도권은 물론 부산지역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성공비결에 대해 주저없이 "신뢰였다"고 답했다. 그는 "사업이라는 것은 '신뢰'라고 생각한다. 스폰지 제품을 규격과 비중을 속여 팔던 시절에도 나는 항상 정직하게 정확한 수치로 말하고 판매를 했다. 지금도 사업에서 기본 자세는 정직과 진실이다. 상대를 속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금도 업계에서 금호화성 하면 믿음이 있는 회사다 하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서울=강덕균 선임기자 dkkang@jnilbo.com dukkyun.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