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아이 캔 스피크 잉글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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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문화향기>아이 캔 스피크 잉글리시
김강 호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 입력 : 2020. 01.14(화) 13:50
  • 편집에디터
김강 호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한국에 태어나서 한국어만 한 게 뭐 그리 잘못인가요? 십년 동안 배워봤자 평생 일주일도 못써먹는데, 영어 못한다고 덜 떨어진 인간 취급하는 우리나라가 미친 거예요!"

2003년 개봉된 영화 '영어완전정복'의 여주인공, 대한민국 9급공무원 나영주(이나영 분)이 토해내는 당찬 항변이자 한 맺힌 '크라잉'이다. 백 번 지당한 말씀이다. 잔 다르크의 기개에 버금갈 만치 매섭게 퍼붓는 영어 컴플레인은 한반도 잉글리시 리퍼블릭에서 살아가는 영맨들의 폐부를 가슴 시리게 찌른다. 영어는 당시 우리 대다수의 콤플렉스이자, 영어만 잘해도 취직할 수 있다는 석세스 신화의 단골메뉴였다.

영화는 동사무소에 외국인, 아니 블루 아이즈 에이리언이 침공하여 말을 건네는 것으로 스타트한다. 손발짓 다해 허둥거리지만 최소한의 다이얼로그조차 임파서블하다. 사무실은 패닉에 빠지고, 매니저는 위기대책으로 직원 한 명을 잉글리시 아카데미에 급파한다. 소주병 돌리기라는 베리 '페어'한 선발과정을 거쳐 뽑힌 인재가 바로 나영주. 그녀의 미션은 'only' 영어 컨퀘스트다. 그러나 "하우두유 두"를 마스터하기도 전에 영주는 엘리베이터에서 잃어버린 스니커즈를 찾아서 신데렐라처럼 자신에게 신겨준 구두 세일즈맨 문수(장혁 분)에게 마음을 뺏기고 만다.

외모를 따져가며 여성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문수는 전형적인 연예인병 룸펜이지만, 인생의 딥 페인이 있다. 가난 때문에 영 시스터를 아메리카로 떠나보낸 것이다. 입양된 여동생이 커밍홈 한다는 뉴스는 스터디와 생면부지인 문수를 영어학원으로 푸시한다. 큐피드의 눈먼 애로우를 맞은 영주는 열렬한 러브어택을 펼치지만, 쁘티셀럽을 쫓는 문수의 뒤집힌 시선에 두꺼운 블랙안경테를 눌러 쓴 그녀가 잡힐 리 만무하다. 청춘커플의 좌충우돌 연예방정식을 코믹하게 스케치한 이 무비에서 영어가 그들의 엽기적인 밀당을 아슬아슬 이어주는 트랩이었음은 물론이다.

젊은이들의 영구한 현실과제인 영어와 사랑은 서로가 닮았다. 첫째, 젊어서 해놓아야 후회가 없다. 둘째,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안하거나 못하면 노골적으로 바보취급을 받는다. 셋째, 사랑도 영어도 좌절하지 않은 불굴의 용기가 필요하다. 쿨쿨한 해장국 땡기는 속 쓰린 비유다.

'영어완전정복'이라는 타이틀이 강조하듯이, 영어가 코리언보다 중요하다는, 뭔가가 뒤바뀐 요즘 트렌드에 방점을 찍는다면, 이 영화는 웃음코드에 쓴맛을 새긴 블랙코미디이다. 10년 넘게 영어를 배워도 외국인과 컨버세이션 한마디 셰어하지 못하는 잉글리시 에듀에 대한 촌철살인의 호러블 풍자다. 이그잼 단어는 빵빵한데 리스닝과 스피킹은 거의 바닥인 아저씨와 취업공포 완화제 학원만 수십 개째 배회하는 아가씨가 클래스메이트로 섞이는 장면은 우리사회의 토탈 아이러니를 꿰뚫는 듯하다. 영어가 성가시지만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만치나 드셌던 영어가 요새 스러져가는 낌새다. 지방에서 더욱 그런듯하다. 덕분에 대학입시에서 최상의 성적과 경쟁률을 누렸던 영문학과의 인기도 덩달아 시들어간다. 폐과의 고스트들이 네이버에 출몰한다. 프라이빗 대학 연평균 등록금이 OECD 4위로 급등하자 정부의 인상억제에 재갈물린 대학의 셀프생존은 졸업학점을 '시나브로' 줄이는 것이다. 그 난장에 영어도 필수에서 선택으로 다운사이징 됐다.

글로벌 에이지와 맞물려 4차 산업혁명과 AI까지 등장한 마당에 영어는 '월드 시티즌 랭귀지'라는 시중의 철딱서니 없는 어드바이스에도 '선생과 학자들의 공동체'라는 유니버시티는 여전히 계산에 알뜰하다. 영세한 가게에 잘 팔리지 않을 물건을 쟁여둘 스투피드 오너가 어디에 있겠는가. 게다가 수도권이 학생들의 취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영어 등 외국어에 선투자하는 반면에 지방은 저임금 노동취업 확대를 통해 국가지원사업용 취업률이나마 리뉴하려는 매직에 골몰하는 판세니 기초학문에서 한낱 'job 도구'로 전락한 영어에 굳이 집중할 이유도 여유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작년 우리나라 대기업 신입합격 스펙의 평균 토익점수는 836점으로 치솟았다. 이곳 학생들이 체감하는 교육웰빙 소외감과 취업레이스 초초함에 '역'비례하는 최고치다. 4년제 로컬대학들이 경영원론의 수준으로 미래비전에 대한 용의주도한 리서치도 없이 칼리지와 직업스쿨의 완판상품을 덤핑으로 사재기하다보니 '아카데미아'가 '잡'학원으로 패스트 트랙 모드다. 우리 삶의 전래지혜는 목구멍이 포도청, 위기마다 보호집중보다는 이익선택이 퍼스트였다. 백년지계라는 국가교육정책은 폴리티컬 헤드가 바뀌는 삼사년 텀으로 업사이드 다운하니 어떤 가게들이 롱런하여 버틸지 걱정이다.

영어가 유행에 뒤처진 패션처럼 뭉겨진 오늘, 한 뉴스페이퍼 헤드라인이 우리 쌍눈에 번개를 때린다. "93세 영어공부 할머니, 대학에 2억 장학금 기부" 오 그뤠잇. 영어완전정복, 결국 실천하는 자의 마우스에 달려있다. 아이 '캔' 스피크 잉글리시!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