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창> 희망교실의 업그레이드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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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창> 희망교실의 업그레이드를 기대하며
정만호<광주봉주초 교사, 미래교실네트워크 광주대표>
  • 입력 : 2019. 12.08(일) 14:44
  • 편집에디터
"멘티라고 불리는 학생 몇 명과 보드게임 카페에서 게임도 하고, 중국 음식집에서 자장면도 먹고 왔어요. 자기들만 데리고 나간다고 하니 아이들이 온종일 신나서 좋아하더라고요. 선생님이랑 학교 밖으로 놀러 가는 게 그렇게 좋은가 봐요." "서울에도 희망교실이 있나요? 광주에서는 이미 2013년부터 희망교실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아, 희망교실이 광주에서 처음 시작된 거군요. 몰랐네요."

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서울의 한 선생님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가 나눈 대화였다. 학급에 불리한 여건에 있는 학생을 위한 희망교실 프로그램이 그 효과를 인정받아 다른 지역 교육청에서도 벤치마킹하였나 보다. 대화를 주고받는 내내 광주에 근무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왠지 어깨가 으쓱하게 되는 일이었다.

2013년 첫 삽을 뜬 광주희망교실은 1년간만 만나고 헤어지는 선생과 학생 사이를 넘어 선생님을 인생의 멘토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시작되었다. 필자는 첫해부터 지금까지 희망교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원래 희망교실이 경제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있거나 정서적으로 도움이 더 필요한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라 처음에는 한정된 예산으로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러나 희망교실을 운영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밝아지는 학생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방과후에 선생님과 멘티학생의 일대일 경험이 쌓이다 보니 교사와 학생의 긍정적인 관계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많은 선생님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3월 한 달 아이들을 무섭게 해서 잘 잡아놓으면 일 년이 편하다.' 그러나 이렇게 일방적인 권위와 강압에 의해 세워진 관계는 모래성과 같아서 처음에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작은 흔들림에도 금방 허물어지고 만다. 학생을 순종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학교와 학교밖에서 학생과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면 굳이 교사에 대한 존경을 강요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교사를 존중하게 된다. 이런 관계 속에 이루어진 배움은 학생들에게도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희망교실을 운영하면서 더 좋았던 점은 서서히 사그라들던 초임 시절의 열정을 다시 깨워준 것이었다. 초임 시절을 돌아보면 수업은 알맹이가 없었고, 학교 일은 서툴러 빈틈이 많았다. 그러나 아이들과 일 년 동안 잘 지내보겠다는 열정 덕분에 매일 매일이 즐거웠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교사라는 직업이 익숙해지면서 수업도 학교 일도 어느덧 능숙해졌지만, 학교 근무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면 내일 출근 전까지는 학교 생각하기 싫다는 마음이 해가 갈수록 더 커졌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희망교실은 식어버렸던 열정을 다시 깨워주었고, 교사라는 사명감, 자부심으로 다시 자리 잡게 해주었다. '아, 이래서 이 친구가 수업 시간에 기운이 없었구나.' '이 녀석이 아침마다 늦게 오는 이유가 있었구나.' 학생의 문제행동을 발견했을 때 예전에는 무조건 화를 내고 비난을 했다면 이젠 문제 행동의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졌고,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주위에 희망교실을 운영하는 선생님들을 살펴보면 희망교실을 희망교실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선생님과의 데이트 등으로 부르며 운영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아마도 희망교실 사업이 학급에서 더 배려가 필요한 학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교사 입장에서는 낙인효과 등을 염려하여 다른 일반학생들은 모르도록 비밀스럽게 운영하려다 생긴 일일 것이다. 비밀이 계속 잘 지켜지면 좋겠지만 이런 학급에 있던 비밀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이라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은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 점이 운영하는 교사 입장에서 참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장기적으로 희망교실 운영 대상을 불리한 여건에 있는 학생에만 국한하지 말고, 모든 학생으로 열어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한다. 단, 희망교실의 취지가 좋은 만큼 기본적인 운영 방향은 그대로 유지하되 운영 대상과 활동 방법 등은 최대한 교사에게 맡겨두면 좋겠다. 희망교실 사업을 신청하는 교사는 기본적으로 자기 시간을 기꺼이 아이들에게 투자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므로 그들의 교육적 의지를 믿고 재량껏 운영할 수 있도록 북돋아 주면 더욱더 좋겠다.

일 년의 교육과정이 서서히 마무리되는 12월에는 학교마다 지난 교육활동을 돌아보고 내년도 교육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학생, 학부모 설문이 한창이다. 설문 항목 중에서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교육 활동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예전에는 대개 운동회나 축제, 체험학습 등이 대부분을 차지했다면 희망교실 운영을 시작하고 나서는 단연 희망교실을 꼽는 학생, 학부모가 많아졌다. 우리 지역에서 시작된 희망교실 사업이 우리나라 교육의 희망이 되도록 매년 업그레이드되는 희망교실을 상상해본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