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만화에 담긴 일상 속 인종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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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만화에 담긴 일상 속 인종 차별
책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
  • 입력 : 2019. 11.14(목) 17:03
  • 최황지 기자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 | 예롱 | 뿌리와이파리 | 1만6000원

지난해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빌보드 뮤직 어워드 무대에서 '페이크 러브'의 가사를 바꿔 부른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가사 중에서 '니가' 혹은 '내가' 부분이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 '니거(N*gger)'로 들릴 수 있기에, BTS는 '니가 좋아하던 나로 변한 내가'를 '결국 좋아하던 나로 변한 사람'으로 바꾸는 등 우리말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고민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책은 이 같은 고민과 배려가 담긴 만화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흑인 남자친구 만니와의 일상을 이야기로 풀어낸 이 책을 통해, 예롱 작가는 알게 모르게 한국에 만연한 차별을 짚어내며 우리가 더불어 지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독자와 함께 고민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연재되는 '예롱쓰의 낙서만화'(@yerongNmanni)를 단행본으로 엮은 책으로 외국인(특히 흑인)이 한국에서 실제로 경험한 차별을 주 내용으로 한다. 외국인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모든 한국어 대사가 영어로 번역됐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이 책은 자신이 겪은 차별을 설명할 수 있는 소통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보면 겪게 되는 일상의 차별부터, 흑인이라는 이유로 모욕감을 느껴야 했던 이야기 등이 익숙하게 지나쳤던 일상 속 행동들을 독자로 하여금 다시금 되짚어보게 한다.

이 책은 흑인이 어떤 차별을 겪는지 설명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나아가 여성, 장애인 등 이 사회에서 다양한 약자들이 겪는 불합리함을 언급하며 논의를 확장한다.

이 책은 거창한 차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당연하게 떠드는 농담 속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에 배어 있는 사소한 차별, 그게 당사자에게는 아픈 송곳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자잘한 차별의 숱한 사례를 보여주며, 우리가 딛고 있는 공간이 이방인, 소수자, 피해자 들과 함께 살아가기에 얼마나 허술한지 말하고 있다. 자잘한 것부터 바꿔나갈 때 비로소 더 나은 세상과 만날 수 있음을 역설하는 게 아닐까.

최황지 기자 orchi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