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영의 그림 큐레이션> 강인한 용기와 열정이 일궈낸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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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영의 그림 큐레이션
문희영의 그림 큐레이션> 강인한 용기와 열정이 일궈낸 그림들
메리 빌 Mary Beale (1633~1699, 영국), 최고의 초상화가가 된 여성.||베르트 모리조 Berthe Pauline Morisot (1841~1895, 프랑스), 열정적 인상주의 화가.||수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1867-1938, 프랑스), 삶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여인. ||임현채, 무게를 견디며 한걸음씩 내딛는 삶.
  • 입력 : 2019. 07.30(화) 14:40
  • 편집에디터

한 인간으로서의 열정이 그려낸 그림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이 사회 전면에 나서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현 시대에 여성이란 단어를 언급하기에 조금은 진부할지 몰라도, 예나 지금이나 여성의 삶이 겪어가는 여러 상황들은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와 삶의 과정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을 쏟아내게 한다.

17세기 영국의 가부장적 사회 안에서 당당히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쌓은 메리 빌, 여성이었지만 혁명적인 인상주의 작가의 일원으로 새로운 예술을 꿈꿨던 베르트 모리조, 수많은 화가들의 모델에서 스스로 화가의 길을 개척해나간 수잔 발라동, 그리고 작가이자 엄마, 아내로 새로운 삶의 무게들을 그려가며 삶의 의미를 되묻는 임현채 작가. 네 작가의 그림에서 여성이란 이름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꿈꾼 열정적 삶과 강인한 용기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고자 한다.

메리 빌 Mary Beale (1633~1699, 영국), 최고의 초상화가가 된 여성.

서양 고전의 여느 초상화 같지만 뭔가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왼편에 그려진 여인만이 당당하게 앞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와 그림의 바깥으로 시선을 둔 어린아이. 평범한 가족초상화인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결코 평범하지 않다.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여인은 바로 그림을 그린 화가인 메리 빌이다. 그녀는 17세기 영국 사회의 남성화가들 사이에서 초상화가로 당당하게 이름을 남겼다. 400여 년 전,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었던 사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까지 그녀가 일궈간 궤적은 얼마나 복잡다단했을까. 실력을 인정받은 초상화가로 끝없는 주문에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려나갔다. <남편과 아들이 함께 있는 자화상> 작품에서 보이듯 그녀 삶의 주인공은 그녀였다. 남편은 실직한 후 아내의 작업실을 관리하고 모델을 섭외하는 등 화가인 아내의 뒷수발에 열심이었다. 미술사 속 조금은 생소한 이름의 화가이지만 그림 속 여인의 얼굴에선 당당한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온다.

메리 빌 캔버스에 유채, 60.2x74cm, 1664.

메리 빌 <남편, 아들과 함께 있는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60.2x74cm, 1664.

https://curiator.com/art/mary-beale/self-portrait-of-mary-beale-with-her-husband-and-son

베르트 모리조 Berthe Pauline Morisot (1841~1895, 프랑스), 열정적 인상주의 화가.

포근한 요람 속 잠든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 여느 가정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림이지만, 이러한 풍경이 여성화가에 의해 그려졌다는 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림 속 여인은 화가의 언니인 에드마 모리조로 인상파의 유일한 여성화가였던 베르트 모리조의 언니이고, 화가를 꿈꿨지만 포기했던 한 여성이었다.

베르트 모리조는 언니와 함께 화가의 길을 꿈꿨다. 하지만 당시는 여성들의 사회생활이 결코 자유롭지 않았고, 언니는 화가의 꿈을 접고 서른이 가까운 나이에 결혼했다.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언니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여인의 복잡 미묘한 표정이 다시 눈에 밟힌다. 화가가 아닌, 엄마이자 아내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언니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을 모리조 자신의 고심이 그림 속 얼굴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마네의 뮤즈이기도 했으며, 팜므파탈 분위기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모리조는 드가의 적극적 권유로 인상주의 그룹의 첫 번째 전시부터 합류했었다. 이후 총 8번의 전시 중 7번을 참여할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그림이지만, 그림 뒤편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 치열했을 삶의 쳇바퀴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베르트 모리조 캔버스에 유채, 56x46cm, 1872, 파리 오르세미술관.

베르트 모리조 <요람> 캔버스에 유채, 56x46cm, 1872, 파리 오르세미술관.

수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1867-1938, 프랑스), 삶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여인.

상체를 세우고 반쯤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이 범상치 않다. 강렬하고 짙은 파란색을 배경으로 누워 담배를 문 여인의 발치에는 책이 놓여 있다. 담배와 책, 당시 남성의 전유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고상하고 우아한 귀족의 모습도 아닌 하층민으로 보이는 여인의 곁에 그것들이 그려졌다. 화가인 수잔 발라동은 스스로를 이렇게 그렸다. 남성에 의해 그려진 모습도 아니고 여성 스스로 자신의 자화상을 이렇게 그리는 것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삶도 파란만장했다.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거리의 소녀로, 서커스 공중곡예사가 되었지만 부상으로 쫓겨나고 화가들의 모델이 된다. 르누아르, 로트렉의 모델이 되었고 재능을 알아본 로트렉은 그녀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움을 준다. 18세의 나이에 사생아를 출산하고, 훗날 화가가 된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의 친구와 결혼하는 등 파격적 삶의 행보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지만 더욱 파격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그림들이었다. 여성이 그린 여성의 누드, 여성이 그린 남성의 누드, 대담하고도 화려한 화면은 여성으로서가 아닌 한 인간의 무한한 열정이 빚어낸 결과였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서려 했던 의지는 스스로를 치유하며 독립적 인간으로, 삶의 주인으로 훗날 프랑스 미술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추대되기까지 하며 당당히 성공을 거머쥐게 했다.

수잔 발라동 캔버스에 유채, 90x116cm, 1923, 파리 퐁피두미술관.

수잔 발라동 <푸른 방> 캔버스에 유채, 90x116cm, 1923, 파리 퐁피두미술관.

임현채, 무게를 견디며 한걸음씩 내딛는 삶.

작디 작은 코끼리의 등에 올려진 거대한 풍선, 그 위로 놓인 아슬아슬하지만 따스한 풍경. 묵묵히 걸어가는 코끼리의 뒷모습이 쓸쓸할만도 한데, 알록달록 풍선 덕분인지 뭔가 포근하다. <무게>라는 작품의 제목이 말해주듯 작가 스스로의 삶의 무게는 그림이 되었다. 작가라는 이름 위에 얹혀진 아내이자 엄마인 무게. 전혀 몰랐던 삶의 무게는 급작스레 어깨를 짓누르기도 하지만, 엄마가 되어 새로이 바라본 세상은 삶의 더 크고 진중한 의미들을 볼 수 있게 했다. 무겁지만 가볍게, 또 즐겁게 내디디는 삶의 걸음엔 그녀만의 강인함이 베어난다. 엄마이기에 강인하게 버틸 수 있는 무게는 어떻게든 다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비단 그녀만이 아닌 모든 작가이자 엄마인 많은 여성들에게 공통적 감정일 터, 필자도 그림을 보는 순간 아뿔싸,,, 삶은 그런 거였다고 무겁고도 가볍게, 또 즐겁고 행복하게 헤쳐 나아갈 수 있다고, 그 걸음걸음 잘 내디딜 수 있다고 위로를 건네받았다.

임현채 , 116.8x91.0cm, 종이위에 과슈, 2019

임현채 <무게>, 116.8x91.0cm, 종이위에 과슈, 2019

강인한 용기와 열정이 일궈낸 그림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가둘 수 없는 넘치는 열정과 삶의 현실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작가들. 그들의 용기와 열정은 새로이 작품이 되어 관객들과 마주한다. 네 작가의 그림들로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열정과 꿈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