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영의 그림 큐레이션>독서의 계절, 책을 담은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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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영의 그림 큐레이션
문희영의 그림 큐레이션>독서의 계절, 책을 담은 그림들.
카를 슈피츠베크(Carl Spitzweg 1808~1885). <책벌레>, 방안 가득 책의 내음 속으로. ||존 레버리(John Lavery 1856~1941). , 책에 빠져든 여인.||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1593). <도서관 사서>, 책일까 사람일까.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80). <세 권의 책>, 책, 인생의 친구.
  • 입력 : 2019. 09.24(화) 13:55
  • 편집에디터

독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여정.

눅눅함이 사라진 산뜻한 바람. 그 바람이 콧등과 귓가를 간질이는 촉감. 아주 깊게 귀를 기울여야지만 들리는 작은 풀벌레 소리. 저녁 시간이 되면 여느 집에선가 끓이는 보글보글 찌개의 구수한 냄새, 차츰 팔을 덮어가는 옷들. 가을이다. 자연은 무어라 지시하지 않아도 언제나 제 할 일을 하고, 제 임무를 완수한다. 온 몸의 감각이 가을을 느껴갈 즈음이면, 널따란 잔디밭에 앉아 책에 빨려 들어가는 상상을 한다. 갈수록 바빠지는 사람들의 일상, 언제부턴가 손에는 전자기기만이 들렸다. 더욱 분주하게만 흘러가는 일상을 뒤로 하고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봄이 어떨까. 이번 그림 큐레이션은 '책'을 담은 그림들이다.

카를 슈피츠베크 Carl Spitzweg, 책에 흠뻑 빠진 남자.

벽면이 온통 책으로 둘러쳤다. 손도 닿지 않아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 있는데 뭔가 자세가 어정쩡하다. 백발이 무성하건만 책 안을 뚫고 들어갈 듯한 눈빛도 모자라 팔이며 다리 사이까지 온통 책을 붙들고 있다. 팔다리가 불편할 듯도 한데 아랑곳 않고 오로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눈빛은 멈출 줄 모른다. 천정 위 따스한 볕도 남자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고, 길게 드리운 그림자와, 검은 자켓은 그림 속 남자에게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게 한다. <책벌레>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그림 속 주인공은 스스로를 책 안으로 끝없이 밀어 넣는다. 작가인 카를 슈피츠베크는 독일의 화가로, 처음에는 약학을 전공하였으나 그림으로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 19세기 독일 중산층의 일상을 탁월하게 묘사했는데, 그가 포착한 평범하고도 특별한 감성은 프랑스의 바르비종파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책벌레>를 보면, 오래된 책들의 퀴퀴하고도 정겨운 냄새가, 책에 파묻힌 퀭하고도 즐거운 얼굴이 자연스레 연상되며 책 안의 너른 세상을 항해하고픈 고달프고도 흥미진진한 여정을 따라가고 싶은 맘이 밀려오는 듯하다.

존 레버리 John Lavery, 책을 보는 여인

상류층 여인인 듯 우아한 포즈로 앉아 시선이 닿는 곳으로 책을 올려들었다. 반듯하게 세운 몸은 당당하고, 집중하듯 책으로 쏠린 눈꺼플과 살짝 웃음을 머금은 듯한 입술은 책의 재미가 얼마 만큼인지 상상하게 한다. 겸손하기 보다는 자신감 충만한 당당함이 넘쳐난다. 1908년 그려진 은 책에 푹 빠져 있는 여인이 묘사되었다. 책을 보는 여인이라, 지금보다 100년도 훨씬 전이 이 시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근대가 되고 비로소 변화하는 사회는 이렇게 그림으로 담겨졌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지식습득은 그 담장을 넘었다. 여인들도 당당히 사회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고, 지식층의 일부로 사교를 위한 교양을 넘어 자신만의 지식을 쌓아가는 게 가능해진 시대였던 것이다. 작가는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한 초상화가 존 레버리(1856-1941)로, 그의 그림에서는 당시 시대의 분위기가 그대로 읽힌다. 휴가지에서 책을 보는 여인, 남성들과 골프, 승마 등 스포츠를 즐기는 여인 등 자신만의 여유를 즐기기는 여성들이 자주 등장한다. 아일랜드의 대표 초상화가이기도 했던 존 레버리에게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여인, 특히나 지식을 쌓아나가는 여인은 더욱 특별한 그림의 소재가 되었으리라. 상류층이라는 배경을 떠나 한 인간으로 자신의 지적 충만함을 추구하고자 했던 모습은 이렇게 그림으로 남았다.

주세페 아르침볼도 Giuseppe Arcimboldo, 책이 된 사람, 사람이 된 책.

언뜻 보면 사람의 모습인데, 자세히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다. 펼쳐 놓은 책은 머리카락이 되고, 책에 달린 고리는 귀가 되었다. 눈, 코, 입 다 책의 형상이 조합된 것이다. 설마, 하나라도 책이 아닐 거란 상상은 들여다볼수록 여지없이 무너진다. 심지어 손가락도, 책에 꽂힌 종이들이고, 거대하고 두툼한 주황색 책은 어께에 걸친 망토가 되었다. 참, 화가의 재치에 허허 혀를 내두르게 될 뿐이다. 그렇다면 화가는 누구를 그렸을까. 책이라는 소재가 말해주듯, 바로 도서관의 사서였던 실존인물인 막시밀리안 2세 시대 궁정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사서 볼프강 라지우스가 그림의 모델이다. 16세기 비엔나와 프라하의 신성로마제국 궁정에서 활동한 아르침볼도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독특한 초상화를 제작했다. 유명한 그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시리즈에는 각 계절의 자연물과 인물의 직업과 관련된 사물들이 교묘하게 조합되어 있다. 게다가 초상화라는 꼭 닮은 인물의 특징까지 놓치지 않고 있어서 더욱 신비롭다. 책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책이 된 그림이다. 사서라는 사람의 성실함과 충직함이 느껴지는 그림 덕분에 책은 더 경건하고도 친숙하게 느껴진다.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책, 인생의 친구.

친구도, 가족도 쉬이 편하지 않았던 고흐에게 그림은 인생의 모든 것과 바꾼 전부였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고독과 가난의 길에 책과 편지는 그의 마음을 달래주던 유일한 해방구가 아니었을까. 고흐가 그린 정물 그림들엔 화려함보다도 소박한 일상의 사물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의 삶과 꼭 닮은 듯 소박하게 등장하는 사물들 중 책을 그린 그림들도 몇 점이 있다. 실제 고흐는 에밀 졸라의 책을 깊이 탐독했었고, 그가 그림 공부를 시작했던 것도 밀레의 화집이었다. 목사인 아버지 덕분에 성경은 어려서부터 늘 따라다니던 책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촛불과 성경책이 놓인 정물을 그리기도 했다. 책은 그의 정신세계를 지탱해주던 유일한 사물이 아니었을까. 고향이 아닌 다른 곳을 전전하는 방랑자 같은 생활과 끝없는 고독과 외로움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친구가 되었던 책. 고흐의 그림이라서인지 덩그러니 놓은 책에서 뭔지 모를 쓸쓸함이 베어난다.

읽고 생각하는 풍만함 속으로.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면 알아내지 못할 게 없는 세상이다.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도로의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어떤 상점이 있는지 너무 많은 앎은 편함도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를 퇴화시켜가고 있는 건 아닐까. 빠르게 주어지는 지식정보가 아닌, 천천히 곱씹어 되새기며 보는 것. 그리 보면 그림과 글도 참으로 닮았다. 하나의 그림이 그려지기까지 작가의 수많은 고민과 붓질이 지나가듯, 하나의 책이 되기까지 작가는 수많은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쳤을 터. 그래도 우리는 이것들을 보고 읽어가며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책을 담은 그림을 보며 다시 손에 책을 쥐고 더 큰 세상을 유영해보길 바란다. 어린 시절, 책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기억처럼, 작가가 선사하는 또 다른 세상을 가을과 함께 만끽해 보는 건 어떨까.

카를 슈피츠베크 1850, oil on canvas, 49.5x27cm,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Carl_Spitzweg)

존 레버리 1908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Reading)

반 고흐 , 1887.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works_by_Vincent_van_Gogh)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