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매장지 새롭게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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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안중근 의사 매장지 새롭게 밝혀졌다
"교도소 내 묘지"→"지역 기독교 묘지"||국가기록원, 당시 러시아 극동 언론 보도 수집·공개
  • 입력 : 2019. 05.28(화) 16:55
  • 서울=강덕균 선임기자 dkkang@jnilbo.com

안중근 의사의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과 발언 내용을 소개한 러시아 극동 지역의 신문기사 24건이 최초 공개됐다. 하얼빈 의거부터 일제의 심문, 사형집행의 구체적인 묘사와 함께 러시아의 상황인식 등을 담고 있어 앞으로 안 의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28일 설립 50주년 및 공공기록물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키 등의 지역신문이 보도한 안중근 의사 관련 기사 24건을 수집·공개했다.

국가기록원이 2015년 러시아 극동지역을 대상으로 사료를 수집하던 중 발굴한 것으로 안 의사 의거일 다음 날인 1909년 10월27일부터 1910년 4월21일까지의 보도 내용이다.

그동안 안중근 의사 관련 러시아 신문기사가 단편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으나, 러시아 극동지역 여러 신문의 관련 기사를 망라하여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들 신문에는 시종일관 의연했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 차이쟈고우에서의 의거 준비, 체포과정,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인식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쁘리 아무리예' 신문은 1909년 11월2일자 보도를 통해 하얼빈 거사를 위해 떠나는 안중근과 동료 우덕순, 조도선이 눈물을 흘리며 큰 절로 인사하는 장면까지 르포 형식으로 기사화했다.

'보스토치나야 자랴지(紙)' 11월 2일자와 4일자는 일본 총영사관에서 있었던 첫 심문에서의 안 의사 진술이 그대로 실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이토 사살은 우리 조국 역사의 마지막 장이 아니며, 아직 살아 있는 것이 기쁘며, 나의 유골에 자유가 비출 것이다" 등이다.

안 의사에게 사형이 선고된 2월26일 재판 상황을 보도한 '쁘리 아무리예' 신문 1910년 2월27일자에 따르면 안 의사는 1시간 동안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했고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다고 보도했다. 조국을 위해 가치 있는 죽음을 맞이하라는 안 의사 어머니의 마지막 인사말도 전했다.

특히 안 의사의 매장지와 관련된 보도가 주목을 끈다.

'우수리스까야 아끄라이나' 신문 1910년 4월21일자는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직후 교도소의 예배당으로 옮겨졌다가 지역의 기독교 묘지에 매장됐다'고 보도했다. 종전까지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는 교도소 내의 묘지로 알려져 있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안중근 의사와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뿐만 아니라, 의거 준비, 체포와 일본영사관 인계과정 등 사후 조치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안다"며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맞아 독립정신을 실천했던 안 의사의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을 국민과 함께 하고자 공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서울=강덕균 선임기자 dkkang@jnilbo.com dukkyun.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