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 김현국의 하바롭스크를 걷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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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국의 유라시아 탐험기
탐험가 김현국의 하바롭스크를 걷다 2
새롭게 만나는 것들 – 도전과 개척의 키워드를 가진 사람들
  • 입력 : 2019. 01.03(목) 10:54
  • 편집에디터

호주에서 온 바이크 여행자- 이야기와 모험을 찾아 시베리아에 온 젊은이들. 어느 시대에나 받아들여지는 창의적이고 경쟁력이 있는 이야기는 안주와 익숙함의 틀을 벗어난 곳에서 자신의 한계와 만나면서 만들어진다고 나는 확신한다. 조상의 고향이 있는 영국이 그들의 목적지이다.

하바롭스크에서 넷째 날

'킴, 이곳에서 살래'라는 말로 금요일 아침인사를 나눈 바이크클럽 회장 이반은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의 내용을 내게 전달해 주었다. 열시 반에 안드레이가 나를 찾아 클럽을 방문할 거라는 메시지이다.

며칠 전, 시 외곽에서 열렸던 바이크 축제에서 안드레이를 알게 되었다. 나를 초대해서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축제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자신의 명함을 내게 남겼지만 나는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었다. 머리를 밀어버린 상태여서 나는 그가 스킨헤드가 아닌가하는 하는 첫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중고차 매매상이라고 자신의 직업을 소개했다. 러시아의 극동 지역에서는 일제 중고차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는 폭스바겐을 선택했고 장기적으로 폭스바겐 대리점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한국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반에게 높이 쌓여 있는 짐을 옆으로 분산할 수 있도록 사이드 가드 구조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내가 타고 있는 바이크의 브랜드와 관련한 회사가 독일에 있어, 그곳으로부터 부품을 주문해서 가져오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말만 돌아왔다. 나는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현지에서 직접 구하거나 제작하는 방법들을 경험해서 다른 여행자들을 위해 자료화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바롭스크에서의 체류기간이 길어져 사이드 가드의 제작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10시 반이 되자 안드레이가 클럽으로 왔다. 손을 내밀며 반가운 목소리로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내게 사우나가 있는 별장을 빌려 놓았다면서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지 물어왔다. 나는 핸드폰을 구입한 뒤, 그에게 연락하기로 했다. 그는 나에게 다시 명함을 건넸다. 오후 4시 정도에 시내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는 되돌아갔다.

오전 11시, 새벽에 숙소로 들어왔던 여행자들이 일어나 짐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호주에서 온 두 명의 바이크 여행자들이다. 가볍게 눈인사가 이루어진 뒤, 나의 시선이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모터바이크가 서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의 모터바이크가 나의 바이크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주차되어 있었다. 사이드 가드에 부착된 양쪽의 짐 가방을 바탕으로 운전자의 뒷자리에 넓은 면적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많은 짐들이 쌓아져 올라가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두 짝의 비포장도로용 타이어가 짐들의 가장 윗부분에 놓여졌다. 각각의 짐들을 쉽게 그리고 단단히 고정할 수 있도록 준비된 두터운 고무줄이 인상적이다. 그들이 선택한 바이크는 나와 같은 기종의 BMW GS 650이다. 이 바이크는 포장과 비포장도로의 환경을 모두 감당하는 것으로 바이커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2010년에 완성된 러시아 횡단도로는 포장도로를 의미하지 않는다. 비포장도로 구간이 곳곳에 있으며 포장도로를 목표로 도로 공사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환경이다. 이들의 바이크가 나와 다른 점은 어드벤처용이라 차체가 바닥으로부터 더 높이 떠있다. 다리가 긴 체형을 가진 이들에게나 비포장도로용으로 더 적합한 바이크이다. 부드러운 표정을 가진 이는 자신의 직업을 외과의사라고 소개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거리감을 두고 있는 그의 친구는 엔지니어라고 대신 소개해 준다. 엔지니어라는 친구는 자신의 바이크 곁에 붙어서 무엇인가를 계속 살펴보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시베리아를 횡단해 조상의 고향인 영국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함께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서 1박2일의 주행을 함께했던 패트릭 콜맨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도 호주에서 온 바이크 여행자이며 목적지가 영국이다. 페이스 북의 메신저를 열어, 현재 그가 1천km를 앞서 '스코보로디노' 부근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자신과 같은 국적의 여행자가 시베리아라는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에 대해 반가워하는 표정을 보인다. 이들도 패트릭처럼 '야쿠츠크'를 거쳐 '마가단'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이동경로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트릭이 머무르고 있는 스코보로디노의 '네베르'는 야쿠츠크를 거쳐 마가단으로 이어지는 길(A360 혹은 M56)이 시작되는 교차로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마가단까지의 거리는 3천1백km이다. 야쿠츠크는 한겨울에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사하자치공화국의 수도이다. 이곳으로 가거나 이곳을 거쳐 마가단으로 가는 길은 모기떼와 야생동물들 그리고 질퍽거리는 땅과 범람한 강물들이 곳곳에 기다리고 있다. 야쿠츠크에서 마가단까지의 2천km는 "뼈의 길"(콜리마대로)로 불린다. 스탈린시절, 강제수용소에 있던 정치범들이 동원되어 만들어졌다. 이 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질퍽거리는 이 땅에 죽은 사람들의 몸이 채워졌고 그들의 뼈 위에 길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모험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에게 이 구간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요즈음 뼈의 길에 대한 이야기는 모터바이크로 시베리아를 횡단하려는 국내의 여행자들에게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디서나 이러한 정보를 항상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은 영어권에 있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경험이 축적된 지구의 자료들이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개방되어 있다. 영어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정보들을 더 빠르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울 때가 있다. 선진국일수록 자국민에게 더 방대한 자료와 더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아카이브(자료 정리)가 잘 구축되어 있다. 특히 서구의 여행자들은 이러한 정보를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몸으로 체험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지구의 오지까지 달려간다. 어느 시대에나 받아들여지는 창의적이고 경쟁력이 있는 이야기는 안주와 익숙함의 틀을 벗어난 곳에서 자신의 한계와 만나면서 만들어진다고 나는 확신한다. 내가 만난 세 명의 호주 여행자들은 모두가 이 야생의 땅으로 향하고자 했다. 우리가 대륙의 북방유전자를 잠재력으로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들도 도전과 개척의 키워드를 자신의 몸과 영혼에 가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오전12시, 그들이 출발하는 것을 보고서 나도 클럽 밖으로 나왔다. 사거리에서 경찰서 앞으로 지나는 길을 선택했다. 대형마트 '삼베리'가 있는 길을 지나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지나는 철길을 만나기 전까지는 '보로네쥐스카야' 거리라고 불린다. 이 거리에 하바롭스크 버스터미널이 있다. 철길 아래를 통과하면 '세르쉐바'거리로 이름이 바뀐다.

이 거리에는 국립 극동대학교가 있으며 길 건너편에 사냥용품 전문점이 있다. 내가 이 가게를 찾는 이유는 짐을 더 단단히 고정할 수 있는 끈과 무기에 대한 유혹 때문이다. 가게 안에는 11개의 시차와 120개 이상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대륙의 환경을 감당할 수 있는 다양한 아웃도어용품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하나하나의 물건들에 대해 시선을 떼기가 쉽지 않다. 특히 다양한 무기들이 펼쳐져 있는 코너는 그냥 지나가기가 무척 힘든 곳이다. 개인적인 취향이라기보다는 자기를 지키기 위한 본능이 나를 갈등하게 만든다. 최종적으로 가스총과 칼을 만져보다가 모두 내려놓았다. 1996년에 모터바이크로 이루어진 러시아 횡단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고민을 겪었지만 나는 맨몸으로 출발했다. 대신 나는 낯선 땅에서 누군가와 갈등이 만들어질 수 있는 원인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여행자가 경계해야할 우선순위는 항상 싸움의 원인이 되는 술과 밤 문화이다. 사건과 사고는 순간적이고, 오랜 시간동안 광활한 대륙을 홀로 횡단하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은 일이다. 눈에 들어오는 물건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하고 바르는 모기약과 철사가 들어가 있는 밧줄만을 구입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길을 따라 걸으며 낯선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자세하게 관찰하며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방향을 바꾸어 조금 더 걷자 숙소로부터 3,1km 거리의 중앙시장이 나왔다. 이 도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시장 안에서 자라다시피한 나는 어느 곳에서나 시장을 좋아한다. 1995년, 내가 이 도시와 처음 만났을 때도 이 공간은 여행자의 낯설음과 배고픔을 쉽게 위로해주었다. 과일과 향신료를 내밀고 있는 중앙 아시아인들과 정육과 유류 제품을 취급하는 러시아인이 시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저렴한 가격으로 생필품 시장에 영향력을 끼쳐온 중국인들의 공간 역시 그 존재감이 크다. 시장의 한편에 야채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 든 러시아인들이 대부분이다. 감자와 오이와 토마토와 채소류를 자그마한 상자 위에 올려놓고 있다. 나는 주로 이들에게서 물건을 구입한다. 시골이나 여름별장, '다챠'에서 기른 농작물에 러시아인들은 농약을 잘 하지 않는다. 시장 안 건물 2층에 있는 아르메니안 식당에서 빵과 샐러드와 피로시키(고기, 채소, 소시지가 들어가 있는 빵)와 감자튀김과 뜨거운 차 한 잔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시장을 빠져나와 레닌광장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로 들어서자 휴대폰 상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MTS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현지에서 '유심'을 구입해서 스마트폰에 넣으면 어디서든지 인터넷으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1996년의 러시아횡단 기억을 살려 되도록이면 아날로그 방식으로 대장정을 감당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2014년에 만난 러시아의 식당이나 숙소에 와이파이 공유기가 설치된 곳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하루 중에 필요한 정보들은 이곳에서 내가 휴대하고 있는 아이패드를 활용하기로 했다. 나는 3만 원대의 저렴한 휴대폰을 현지에서의 전화용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안드레이에게 전화를 걸었고 삼십여 분 뒤에 그가 휴대폰 가게로 달려왔다.

오후 4시 반, 그의 차를 타고 달려간 곳은 대형마트이다. 역시 세계 각지에서 들어온 물건들로 넘쳐난다.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커다란 봉지 두 개에 가득 채우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 차가 움직이기 시작해서 시 중심가를 벗어난 곳에 위치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사우나가 있는 콘도 같은 곳이다. 안드레이의 친구, '로만'과 '이글'은 먼저 와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고기를 구울 수 있는 야외에 자리를 잡고 음식 재료들을 내어놓았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이면 친구들끼리 사우나가 딸린 이런 공간을 빌려 '샤슬릭'과 술과 사우나를 즐기면서 서로의 우정을 다지는 것이 러시아인의 생활 방식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들은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의 한국에 대해서는 비즈니스에 관심을 보였고 나의 목적지가 되는 유럽의 끝, 암스테르담에 대해서는 대마초 합법화나 동성 간의 혼인에 대해 관심을 보여 주었다. 사우나에서 이루어지는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다음 날, 바이크 클럽으로 돌아왔다. 일요일의 출발을 위해, 시장에 나가 먹을 것과 꽃씨와 지도를 구입했다. 부피가 크고 실용성이 작은 옷을 처음으로 내려놓고 우체국을 통해 한국으로 보내는 작업과정을 기록했다. 저녁에는 서쪽을 목표로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바이크 여행자들이 클럽 안으로 들어왔다. 늦은 밤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하바롭스크 중앙시장 안을 채우고 있는 콘텐츠들. 각 자의 이야기들을 찾아가보고 싶다.

하바롭스크지방의 숲에서 야생으로 채취되는 블루베리이다. 몹시 시큼하지만 러시아인에게는 비타민을 공급하는 무척 유용한 열매이다

러시아 전역에서 만날 수 있는 데이터 충전 기계. 현지에서 부여받은 전화번호와 원하는 만큼의 요금을 입력하면 그 만큼의 데이터가 자신의 스마트폰에 충전된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복합기능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의 통신회사 상점 안 풍경.

자동차 매매 상인인 안드레이와 함께 우정을 나누다.

저녁 늦게 클럽을 찾아온 러시아의 바이크 여행자들- 여름에 가까워져 오면 러시아인의 여행유전자가 깨어난다. 클럽을 거쳐 가는 많은 여행자들.

사냥용품 전문점- 하바롭스크 길을 따라 걷다

사냥용품 전문점- 11개의 시차와 120개 이상의 민족을 가진 대륙의 거친 환경을 감당할 수 있는 물건들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