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잔인한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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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잔인한 4월’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5. 04.10(목) 17:29
이용환 논설실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고/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지난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영국 시인 엘리엇의 대표작 ‘황무지’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난해하기로 유명한 이 시는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뚫고 싹을 틔워내는 생명의 버거운 삶을 역설적으로 노래한 것으로 이해된다. 줄탁동시의 지난 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계절, 어쩌면 새 생명을 꽃피우기 위한 어린 싹에게는 한겨울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질지 모를 일이다. 눈 덮인 겨울, 희미하게 잊혀졌던 사랑하는 이의 무덤이 봄비에 파랗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슬픔이야말로 ‘봄의 잔인함’이라는 해석도 공감된다.

이 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딥퍼플의 ‘4월’(April)도 잿빛의 어두운 계절이다. 러닝타임이 12분이 넘는 이 노래는 음악성이 뛰어나고 클래식을 넘나드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지만 이 앨범을 발표한 후 딥퍼플을 주도했던 멤버 존 로드와 리치 블랙모어는 반목을 겪다 결국 결별한다. “봄은 어둡고 비참한 계절/푸르러야 할 저 잿빛 하늘/내가 너를 마주해야 할 곳인 잿빛 하늘/왜냐고 묻는다, 왜 모든 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 지를.”하는 가사에는 결별을 앞둔 오랜 친구들의 아픔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4월은 희망의 계절이다. 4월에 맛보는 따뜻한 햇살은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생동감을 안겨주고 온통 꽃으로 뒤덮인 주위의 풍광은 언제 봐도 감동이다. 이런 봄날을 두고 중국 송나라의 문호 소동파는 ‘봄날의 잠깐은 천금과도 바꾸지 않을 정도의 값어치가 있다’고 썼다. 독일 시인 헤르만 헤세도 4월을 “피어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온 몸을 바치고 삶을 두려워 말아라.”고 노래했다.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봄이야말로 신의 축복과 위로, 지혜라는 의미일 게다. 옛 사람들도 4월의 바람을 은혜가 가득한 바람, 혜풍(惠風)이라고 불렀다.

4월이 중순으로 치닫으면서 주위가 활짝 핀 목련과 벚꽃, 수수꽃다리 등으로 온통 꽃 세상으로 변했다. 볕뉘 쏟아지는 산골에서 만나는 제비꽃과 각시붓꽃, 할미꽃 등 야생화도 앙증맞다. 그야말로 봄에만 맛볼 수 있는 ‘화려한 봄’의 축제다. 하지만 서민들에게 봄날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당장 90일이 유예됐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전 세계 경제가 꽁꽁 얼어붙었고, 대한민국의 경제 또한 불확실성에 따른 심각한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며 출마를 준비하는 ‘못난’ 정치인들의 면면도 어처구니없다. 세대와 종교, 이념, 빈부격차 등이 만든 나라 안팎의 갈등과 혼돈은 또 어떤가. 천금과도 바꾸지 않겠다던 4월, 그 봄날의 잠깐이 이렇게 잔인하게 지나가고 있다. 이용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