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윤영백>학벌없는 세상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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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창·윤영백>학벌없는 세상이 온다
윤영백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살림위원장
  • 입력 : 2025. 01.19(일) 17:43
윤영백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살림위원장
당신은 고요 속에 갇혀 있다. 당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구치소 대기실, 손바닥만한 창을 통해 흔들거리는 무궁화 나무들을 숨죽여 지켜본다. 불쑥 절망의 형상이 드러나기라도 할 것처럼. 방 안의 공기는 무겁고 답답하다. 시선을 넉넉하게 받아주던 공간에서 놀던 눈빛은 세 평짜리 삭막한 벽에 튕겨진다. 세상 구석까지 닿을 것 같던 힘은 반탄력으로 수축되어 구치소 방 한쪽으로 구겨지는 느낌이다.

당신은 좁아진 세상을 거부하려는 듯 최대한 느리게 몸을 가누다 숨을 가늘게 내쉰다. 시간은 더욱 더디고 무심하게 흐른다. 문득 왼쪽 손바닥에 시선이 멈춘다. 당신은 대선 토론회 때 王(왕)자를 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혹자들은 무속에 터 잡은 증거라 몰아세웠지만, 그것은 부적 따위가 아니었다. 당신은 왕의 피를 타고 났으며, 대통령이 아니라 정말 왕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의정부와 육조 대신들을 지엄한 왕권으로 누르듯 거부권을 어명처럼 휘둘렀으며, 헌법마저 짓이겨 밟으려다 미끄러지지만 않았다면 더 힘센 왕이 되었을 것이다.

손바닥 王자가 무에 중요한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고시, 검찰총장. 당신은 이미 학벌과 엘리트의 카르텔 안에서 이미 왕처럼 있었다. 그런 당신은 선출된 권력까지 쥐었다. 학연, 지연, 인맥을 펼치면 육사, 경찰대, 서울대 출신 온갖 명문의 엘리트들은 당신의 왕국 안에서 이내 끈끈한 이해 공동체로 접속되었다.

세상은 당신을 무능력, 불통, 오만, 부조리 등으로 수식하려 든다. 당신 탓에 헌법과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비판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저 왕국의 언어로 우직하게 상상하고, 말하고, 행했을 뿐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12월 3일, 당신이 계엄을 선포하는 모습은 참 기괴하고 비현실적이었다. 게다가 계엄에 대한 공분을 현재형으로 심어 놓은 영화 ‘서울의 봄’이 시상식을 휩쓴 직후이고, ‘소년이 온다’의 힘으로 작가가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기 직전이어서 당신의 계엄선포는 괴기스러운 축하행사나 음울한 전야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만큼 당신은 우둔하고 우직하다. 짓궂은 저질 코미디로만 끝났으면 좋았을 ‘뜬금 계엄’은 잘못 베껴 쓴 것이라는 위헌 포고령으로, 특수부대가 총을 걸고 국회를 깨는 모습으로 이어지며 세상을 옥죄었다.

하지만 당신은 괴물이 아니다. 아니, 당신만 괴물이 아니다. 국회에 총을 겨누고, 헌법을 뭉개려는 모의와 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나는데, 당신과 당신의 신하들은 당신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온갖 하수(下水)조차 끌어다 대고, 논리를 휘어대기에 여념이 없다.

계엄은 잘못이지만 오죽하면 그랬겠나, 위헌이라도, 탄핵은 안 된다, 상황을 수습해야 하지만, 특검법도, 헌법재판관 임명도 안 된다, 국격 훼손한 자를 엄벌하는 건 국격 훼손이다, 권한대행이니 할 일은 못하는 걸로 하고, 전임 하던 일은 그냥 하겠다, 얼레리, 내란 혐의 뺐으니 탄핵도 무효다, 마음에 드는 영장만 따르겠다, 체포영장 있어도 불법이니 무단 침입이다, 공권력이 충돌하더라도 사이좋게 해결하길 빌며 가만히 있겠다 등등.

자신의 이익만 셈하느라, 성찰의 언어로 그 자리에 오르지 않은 자들의 언어는 끊임없이 타락하고, 뒤엉키며, 충돌한다. 세상이 합의한 법의 뿌리가 학벌주의의 정점에 있는 헛똑똑이들에 의해서 허망하게 세절되는 모습을 보며 세상은 고통스럽다. 모두가 꿈꾸는 대학을 나와서 판사이고, 검사이고, 변호사인 자들의 법언어가 이토록 초라하고 엉성하다니.

명문대학에 입학하고, 고시에 합격하거나, 힘있는 자리를 차지했을 때, 학교는 자랑스럽게 당신을 플래카드로 걸었을 것이다. 똑똑한 당신이 더 지혜롭고 명쾌하게 우리가 준 힘을 우리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휘둘러 줄 것이라 믿었지만, 당신들의 성공은 무슨 수를 쓰든 이익이 되는 결과만이 ‘정답’이라 답해 온 결과가 아닌지 이제 세상은 의심하고 있다.

22대 국회, 서울대 관련자 107석, SKY 학부 졸업자 128석, 법조인 출신 61석 역대 최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과잉 대표된, 똑똑한 당신들에 비례하여 행복이 증진되지 않을 것임을 깨닫는 중이다. 이익에 따라 얼마든 똑똑해졌다가 기꺼이 멍청이가 될 수 있는 당신들 밖에서 내일을 찾을 것이다.

세상을 지키는 힘은 총칼 앞에서도 부릅뜬 눈에서, 점령지 앞 편의점 라면을 먹는 게으름에서, 신념까지 얼려버릴 날씨 속에서도 빛나는 응원봉에서, 언 속을 녹여주려 먼저 결제한 커피에서, 남태령 트랙터에서, 은박지를 두르고 눈 속을 지킨 키세스 시위대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런 힘을 북돋는 쪽으로 우리 삶을 디자인하겠다고 깨닫는 중이다.

이제 세상은 평화롭게 손잡을 지혜를 찾는 길, 약한 생명도 존중하고, 배려하는 길, 세상을 위해 자기 것을 나누는 기쁨이 넘치는 길, 헌법과 민주주의의 질서 위에서 성찰하는 길을 찾아 걸을 것이다.

“이런 짓거리들을 보고도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학벌없는 세상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