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종 작가가 30일 ‘2023 허백련미술상 수상작가 전시’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박찬 기자 |
박문종 작가는 30일 광주 동구 소재의 한 식당에서 열린 ‘2023 허백련미술상 수상작가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소회했다.
박문종 작가는 광주시립미술관과 의재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기획초대전의 작가로 선정됐다. 2023 허백련미술상 수상작가 전시 ‘그림으로 농사짓는 화가, 박문종’전은 11월 1일부터 오는 12월 25일까지 55일간 의재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 작가가 바라보는 농촌과 인간,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되짚고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온 예술적 철학을 살펴볼 수 있다.
허백련미술상은 의재 허백련(1891~1977)의 예술가, 교육가, 사회운동가로서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예술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해 제정돼 그동안 장우성(1995 본상), 김기창(1996 본상)을 비롯해 걸출한 한국 서화가들이 이 상을 받았고, 올해는 수상작가 전시를 의재미술관에서 열게 돼 더욱 의미가 깊다.
박문종 작. 땅을 두들며 노래한다(2024). 의재미술관 제공 |
박문종 작. 춘설헌(2024). 의재미술관 제공 |
무안에서 태어난 박 작가는 의재 허백련의 연진회 제자들이 스승의 뜻을 잇고자 1978년에 창설한 연진회미술원 1기생으로 그림에 입문했다. 1980·90년대의 암울한 시대 상황을 필묵으로 표현한 현실주의 수묵화 시기를 거쳤고, 1997년 담양으로 이주한 뒤 그림 작업과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남도의 자연과 농촌을 배경으로 흙과 인간이 주고받는 서사를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농경에 대한 애착은 화가이면서도 농촌 발전을 위해 농업학교를 운영한 의재 허백련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박 작가는 이날 “기라성 같은 허 선생으로부터 ‘삶의 무거움’을 서체의 깊이로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고 밝혔다.
이어 “물감 대신 먹과 종이, 흙만으로도 그림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설 무렵, 본격적으로 농촌을 소재로 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일각에선 농부 화가로 평하지만, 농경지를 소재로 할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80년대의 광주를 지나 90년대에 들어서자, 그는 평소 느꼈던 향토적 정서에 무거움을 덜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이는 그의 작품이 ‘맥락의 일원화’를 이룰 수 있었던 힘으로 작용했다. 다수의 동양화에서 그려지는 산, 안개 등을 구름 밑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공간으로 대체한 그의 작품은 ‘농경도’라는 단어에 대한 집착과 직시가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이번 기획초대전에서 박문종의 초창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총 65점이 전시된다. 그 중 ‘땅을 두들며 노래한다’(2024)는 농가월령가 중 3월령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인간이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일,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경작에 대한 철학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가 이번 전시를 기념해 그린 ‘춘설헌’(2024)은 의재 허백련에 대한 경의를 담은 작품으로 의재의 후학 양성과 창작의 공간이었던 춘설헌을 대나무 숲과 매화꽃에 둘러싸인 풍경으로서 한지에 먹, 채색, 흙물을 이용해 간결하게 그려냈다.
박문종 작. 모내기(2017). 의재미술관 제공 |
김정락 평론가는 박문종의 작품에 대해 “진정한 예술은 삶의 밑바닥을 훑어서 건져낸 삶의 절박함이다”며 “이 절박함이 폐부를 꿰뚫을 때 비로소 공감과 연대가 공명한다. 박문종은 그런 화가다”고 평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오는 12월 25일까지 의재미술관 1, 2, 4전시실에서 열린다. 1전시실에서는 2020년대 작품이 주를 이룬 그의 최신작들을 만날 수 있고 2전시실은 1980~1990년대 작품으로 채워졌다. 넓은 공간의 4전시실은 그의 대형 그림들로 수놓는다.
의재미술관 관계자는 “박문종 작가의 그림들은 크기가 큰 대작들이 많아 작품의 특색을 부각하기 위해 더 넓은 공간의 전시관이 필요했다는 아쉬움은 있다”라면서도 “많은 관람객이 이번 초청전시를 찾아 허백련미술상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자리를 더 의미 깊게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