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여성국극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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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여성국극의 부활
김성수 논설위원
  • 입력 : 2024. 10.29(화) 17:15
임춘앵(1924~1975)은 함평에서 태어나 20세기에 활동한 판소리 여성 명창이자 여성국극 배우다. 임춘앵은 뛰어난 재능에 15세에 서울로 상경했고, 이후 1944년 조선창극단에 입단했지만 극단의 활동과 운영은 남성 전통예술인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어 불평등한 처우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1948년 박록주(1905~1979), 박귀희(1921~1993) 등이 주축이 되어 여성 국악인들만으로 조직된 ‘여성 국악 동호회’를 결성했고. 이때 임춘앵도 여성 국악 동호회에 입회했다.

동호회의 첫 번째 공연인 ‘옥중화’는 춘향전을 각색한 것으로 여기서 임춘앵은 이몽룡 역을 맡게 된다. 안타깝게도 흥행에 실패했지만 여성 국극에서 남장 연기자가 최초로 등장한 작품이었다. 이듬해 오페라 투란도트를 각색해 만든 ‘햇님과 달님’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여성국극의 대명사가 된다. 임춘앵은 이후 큰 인기를 끌며 여성국극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여성국극의 인기는 기존 창극이 소리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연기와 춤, 소리뿐 아니라 화려한 분장과 무대효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데에 있었다. 여기에 여성국극에서는 일관되게 사랑을 주제로 다루며, 여성국극의 남성주인공은 강인하면서도 다정한 당대 여성들이 희망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을 구현했다. 그래서 남역 배우의 연기와 매력은 여성국극 인기의 핵심을 담당했다. 이 같은 대세에 임춘앵이 구가한 인기는 요즘 K-팝 스타 정도쯤 될 것이다. 하지만 여성국극은 1970년 전후 급격하게 쇠퇴한다. 여성국극의 난립과 영화와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밀리면서다. 임춘앵 역시 계속된 실패로 빚더미에 올랐고, 이후 후학양성에 나섰으나 건강악화로 1975년 생을 마감했다. 이후 여성국극은 점차 대중에게 잊혀 갔다. ‘여성국극의 뒤안길’쓴 조영숙 명인은 “나에게는 영 놓지 못하는 예술세계가 있다. 여성국극,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그의 몰락에 안타까운 마음은 꿈속에서도 못 잊는다.”며 임춘앵을 기억했다.

최근 여성국극이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여성국극의 전성시대를 다룬 드라마 ‘정년이’가 큰 인기를 끌면서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소리만큼은 타고난 소녀 윤정년의 여성 국극단 입성과 성장기를 그린 작품이다. 국극의 인기는 70년의 간극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현재에도 인기를 누리는 건 생소한 소재라는 점도 있지만 6·25 전쟁 직후 모든 것이 무너진 환경 속에서 여성들이 꿈꾸는 모습을 극을 통해 표현했다는 점이다. 현 시대에서도 ‘유리천장’같은 사회구조 속에서 꿈을 키워가는 여성들에게 큰 힘을 주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