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역의 카우프만(가운데)과 마르그리트 역의 포프라브스카야(오른쪽), 메피스토펠레 역의 르네포프. |
우리는 타이머신과 같은 과학의 힘이라던지 신비한 현상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는 것을 상상해 본다. 또한, 마법의 힘을 통해 젊음이나 많은 재화를 얻는 기적을 한 번쯤 상상해 본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기 있는 소재로 자주 소설에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예술, 근래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특히 무료한 노년을 보내는 성공한 이들이 묘약이나 마법을 통해 청춘으로 회귀하는 이야기나 사랑과 관련한 악마의 유혹은 매력적인 소재로 각광을 받았다. 악마는 인간의 나약함을 파고들어 유혹하는 신비한 힘의 전달자로 다디단 유혹과 그 유혹의 대가로 인간 파멸을 안기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파우스트역의 카우프만(오른쪽)과 마르그리트 역의 포프라브스카야. |
종합 무대 예술인 오페라에서도 이러한 악마의 유혹은 인기 있는 소재이다. 대표적인 오페라로는 베버(Carl Maria Friedrich Ernest von Weber, 1786~1826)의 <마탄의 사수-Der Freischutz, 1821>,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ander, 1841>, 구노(Charles-Francois Gounod, 1818~1893)의 <파우스트-Faust, 1859> 등을 뽑을 수 있다. 그중 독일의 초자연적 비극인 파우스트 박사의 전설은 가장 잘 알려진 소재로 노년의 학자가 젊음을 얻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아름다운 여인을 취하지만, 나중에 후회한다는 이야기로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의해 작품화되었다. ‘파우스트’ 전설을 주제로 하는 오페라는 16편 정도 만들어졌는데 그중 프랑스 작곡가 구노의 <파우스트>가 가장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파우스트 역의 테너카우프만.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2011-2012 시즌 |
구노의 <파우스트>는 역할마다 주어진 수려한 아리아와 장대한 합창 그리고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극 중 발레가 주목을 받는 오페라이다. 특히 5막에 연주되는 발레곡은 연주회용 곡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구노의 <파우스트>는 1934년 한 해 동안 파리에서 2,000회 이상 공연됐을 정도로 비제의 <카르멘>과 함께 <파우스트>는 프랑스 오페라의 대명사이다. 이러한 성공을 보고 원작자 괴테는 모차르트를 언급했는데 “모차르트가 파우스트를 작곡했어야 했다”라고 그의 저서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1900년대 초반 비평가들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을 파우스트슈필하우스(Faustspielhaus)라고 불렀는데, 1883년의 뉴욕 메트의 개관 공연뿐만 아니라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으로 뉴욕시민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레퍼토리였기 때문이다.
파우스트 역의 테너 카우프만.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2011-2012 시즌 |
줄거리를 살펴보자. 구노의 <파우스트> 주인공인 노년의 파우스트 박사는 우주의 원리를 터득할 정도로 여러 학문에 능통하지만, 자신이 평생을 바쳐 습득한 이러한 학문이 부질없음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회한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이때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에게 “젊음과 영혼의 거래”를 제안한다. 이 제안을 수락한 파우스트는 순결한 처녀 마르그리트를 유혹하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파우스트의 아이를 임신한 마르그리트를 보고 군에서 제대한 그녀의 오빠 발렌티는 복수를 위해 파우스트와 결투를 하지만 메피스토에게 죽임을 당하고 파우스트는 그녀를 떠난다. 마르그리트는 오빠의 죽음과 파우스트의 배신으로 정신이상이 되어 아기를 죽이고 감옥에 갇힌다. 그녀를 찾아간 파우스트는 하늘의 구원을 바라며 죽어가는 마르그리트와 함께 있다. 메피스토펠레는 함께 탈출할 것을 재촉하지만 파우스트는 마르그르트가 숨을 거둔 후 천사에게 영혼이 구원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반성하며 함께 천상으로 구원되어 올라간다.
오페라 ‘파우스트’ 중 제1막 공연 장면.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2011-2012 시즌 |
프랑스 오페라극장인 테아트르 리리크에서 1959년에 초연된 구노의 <파우스트> 초연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절치부심한 구노는 작품의 볼거리를 위해 발레를 확장적으로 도입했는데 1막의 왈츠 장면, 2막 거리의 축제 장면, 5막 발푸르기스의 향연 등을 보강하여 1869년 파리 오페라하우스에서 다시 올려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비로서 음악과 춤의 향연이 더해지며 그랜드 오페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파우스트>는 프랑스를 넘어 세계에서 사랑받는 오페라 레퍼토리로 승승장구한다.
<파우스트>는 프랑스 오페라답게 아름다운 발레 장면이 잔뜩 삽입되어 있다. 오페라 전반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아름다운 춤사위는 관객의 눈을 현혹한다. 그리고 이 오페라 안에는 수려한 아리아와 합창 등이 관객의 귀를 즐겁게 한다. 서정적이면서 아름답기 그지없는 테너 역 파우스트가 부르는 ‘정결한 집’과 ‘병사들의 합창’은 조상들의 영광을 노래하고 이 외에도 함께하는 드라마틱한 합창과 함께 베이스의 저력을 볼 수 있는 메피스토펠레의 아리아 ‘황금 송아지’는 장중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순결한 여인 마그리트가 탐욕 앞에서는 눈이 흐려져 버리는 ‘보석의 노래’도 우리를 사로잡는다.
오페라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역을 맡은 베이스 샬리아핀. 출처 위키피디아 |
<파우스트>에는 숭고함과 아름다움, 수려함, 그와 반대되는 어둡고 장대하며 강렬함이 함께 남아 있으며 이 흑백의 이분법적 논리는 극 전반에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선과 악이 서로를 뽐내기 위해 작품 안에서 반대되는 고뇌와 그를 표현하려는 열망이 음악과 춤을 통해 서로 경쟁하며 관객들에게 긴 공연 시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과 집중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인간의 나약함을 파고드는 악마의 속삭임, 그리고 그 유혹에 속아 욕망에 사로잡혀 나락으로 빠져버리는 인간, 출구가 없이 계속해서 악마에 이끌려 갈 것 같지만 자유의지에 의해 반성과 천사의 구원을 통해 더 이상의 비극을 삭제해버리는 인간의 모습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끝도 없이 휘몰아치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 우리는 항상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고된 인생살이를 탈출하고 싶어 하는 꿈을 꾼다.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통신수단의 발달은 우리 삶을 쉼 없이 가상의 공간에까지 서로를 비교하고 경쟁하게 만든다. 지친 현대인에게 이를 틈 타 몰려오는 수많은 유혹으로 우리는 파우스트가 되어 고뇌하고 유혹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함께 하기도 한다.
파우스트의 선한 의지와 여인 마르그리트의 순수한 사랑을 통해 구노의 <파우스트>는 구원을 받는 아름다운 결말은 현대사회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할 수 있다. ‘파우스트’는 16편의 오페라뿐만 아니라,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의 기악곡 <파우스트 교향곡>과 같이 전설과 연관된 수많은 기악곡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가을 독서와 곁들어 보는 것도 가을의 별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
추천 명곡 : Le veau d‘or est toujours debout(금송아지의 노래) / 노래-베이스 보리스 크리스토프 노래·지휘-앙드레 클뤼탕스
◇베이스의 역량을 과시하는 아리아로 너무 유명한 곡이다. 구노의 파우스트 중 2막의 악마 메피스토펠레가 군에 가는 파우스트가 연모하는 여인 마그리트의 오빠 발렌티를 부추겨 학생들과 신나게 술잔을 나누는데 그사이에 갑자기 나타나 ‘세상은 물질이면 다 된다’라며 호탕하게 부르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