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투자가 부른 재앙…지자체 파산·지역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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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무리한 투자가 부른 재앙…지자체 파산·지역 소멸
●지역소멸 극복 원년 만들자 <상> 日 유바리市 실패사례
최대 석탄생산지 호황…12만 인구
폐광후 관광시설 재정 과도한 투입
부채 급증…지방세 인상 주민 고통
인구유출 가속화…6천명 남아 ‘폐허’
  • 입력 : 2024. 08.08(목) 18:21
  • 일본 유바리시=글·사진 오지현 기자 jihyun.oh@jnilbo.com
유바리 관광 시설 중 거의 유일하게 남아 운영되고 있는 유바리 석탄 박물관.
썰렁한 유바리 시내 모습. 사진 속 차량의 운전자는 폐허가 된 마을을 보기 위해 방문한 일본인이었다.
지방소멸 문제가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전남지역은 22개 시·군 중 20곳이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되는 등 지방소멸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본보는 저출생과 인구감소 등 우리와 유사한 고민을 안고 있는 일본 현지를 찾아 지역소멸 대응 방안을 모색해 봤다. 일본 지자체들의 지방소멸 위기 극복 성공 및 실패 사례를 취재해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일본 훗카이도 중심부인 소라치 지방에 위치한 유바리시. 올해 6월 기준 단 6321명만이 살고 있는 이 작은 도시는 지난 2006년 6월17일 ‘지역 파산’을 선언했다. ‘공공행정은 망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깨지자 일본 열도는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한때 일본 최대 석탄 생산지로 부흥을 누렸던 유바리가 처참하게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1880년대부터 유바리시는 석탄 사업으로 급성장하며 전성기였던 1965년에는 총 인구가 11만7000명, 영화관만 해도 20개가 넘는 등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1970~80년대 이후 에너지 효율화 정책 및 잇따른 탄광 사고로 인해 모든 탄광이 폐광 절차를 밟으며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79년 유바리 시장으로 당선된 나카타 데쓰지 시장이 일자리 창출과 지역 진흥을 목표로 ‘탄광에서 관광으로’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석탄역사마을’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관광사업을 전개했다. 유바리시는 석탄박물관 개관을 시작으로 석탄역사관, 세계동물관, 로봇대과학관, 메론성, 스키장 등 대규모 관광 시설을 건립하기 시작했으며, 방문객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다시금 옛날의 영광을 되찾는 듯 했다.

일본 최대 석탄 생산지로 호황을 누렸던 일본의 유바리시가 폐광 이후 무분별한 관광 개발 사업과 지방재정 투자로 몰락하면서 지방소멸 위기에 직면했다. 사진은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가 열렸던 건물이 시간이 흘러 흉물로 남아 있는 모습.
하지만 일본 버블경제 붕괴와 관광패턴의 변화로 1991년 231만명에 육박했던 관광객이 절반 이상 급감하면서 시설투자금으로만 176억엔을 투입했던 유바리시는 수익성 악화로 부채 상환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했다. 석탄산업 몰락에 이어 관광산업까지 실패하자 유바리시는 일본에서 단기간에 가장 많은 인구가 감소한 지역으로 선정되며 결국 파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다.

지난달 3일 현지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 유바리로 향하는 길.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외부 모습은 그야말로 황폐했다. 곳곳에 즐비한 폐가와 언제 영업했는지 모를 정도로 먼지 가득한 상가, 관리되지 않고 무성히 자라난 잡초와 사람을 찾기 어려운 텅 빈 길거리까지, 과거의 호황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상태였다.그렇게 도착한 ‘유바리 석탄 박물관’. 유바리시가 개발한 관광시설 중 현재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 박물관은 1980년대에 개관해 2016년 콘텐츠 개선을 통해 지난 2018년 4월28일 재개관하며 간신히 관광 명맥을 잇고 있으나 그리 순탄지 않다. 박물관 내부도 옛 갱도를 관람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딱히 특색이 없고, 근처에서 그나마 장사를 이어가고 있던 호수 카페도 오랜 시간 방치돼 스산하기까지 했다.

실제 유바리시의 파산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유바리시는 세입 확보를 위해 지방세, 시설사용료 등을 모두 인상해, 전국에서 세금부담이 가장 큰 지역이 됐다. 반면 공공시설은 주민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을 제외하고는 모두 통합되거나 폐지돼 공공서비스는 최저 수준이다.

이같은 세 부담으로 인해 젊은 사람들의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지난달 기준 65세 고령자 비율은 53.80%에 육박한다.

유바리시의 지방소멸을 불러온 가장 큰 이유로는 1979년 당선 이후 2003년까지 무려 24년간 장기집권하며 적자를 은폐하고, 독재경영을 일삼은 나카타 데쓰지 시장의 경영 실패와 지역주민들에게 전가된 포퓰리즘식 행정비용이 꼽힌다.

특히 나카타 시장은 평소 “차입금을 아무리 많이 써도 마지막에는 국가가 책임질 것이다. 재정이 어렵다고 투자를 줄일 게 아니라 재정이 어려울 때 오히려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가도 머리를 굴리겠지만, 우리가 더 민첩하게 머리를 굴려 국가로부터 돈을 빼내는 것이 최고”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마운트레이스 스키장 앞에 위치한 호텔. 이 호텔은 경영 적자로 인해 중국에 매각되며 3년 전 완전히 폐업했다.
나카타 시장은 재정적자를 은폐하기 위해 분식회계 등을 통해 15년 가량 적자 문제를 숨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출납정리기간인 4~5월을 이용, 특별회계와 일반회계 간 대출과 상환을 반복하며 적자 규모를 키웠다. 유바리시의 적자금액은 재정 규모의 8배가 넘는 353억엔까지 팽창했다. 올해 8월 기준 유바리시의 잔여 채무액은 66억2700만엔에 달한다.

석탄산업의 쇠퇴 이후 무리한 관광산업 전환을 위해 경영악화를 겪고 있던 ‘호텔 슈파로’와 ‘마운트레이스 스키장’을 총 46억엔에 매입했으나, 전문기업이 아닌 유바리시 관계자들이 경영에 나서면서 만성적자에 시달렸다.

탄광 기업들이 주민들에게 제공하던 주택, 목욕탕, 전기, 가스, 수도, 병원 등 사회기반시설도 무분별하게 매입해 유바리시의 재정 압박이 더욱 심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유바리시의 모든 관광 시설은 폐허로 남아, 한 때 이 곳이 2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았었음을 알려주기만 할 뿐이다.

“유바리의 모든 시민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석탄 박물관)은 유바리의 부흥, 재건의 출발이 될 것”이라던 나카타 시장의 공언이 무색하게 유령도시로 전락해버린 유바리시. 현재 유바리시의 고통과 채무는 오롯이 지역주민들이 감당하고 있다.
일본 유바리시=글·사진 오지현 기자 jihyun.oh@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