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에세이·최성주>정권 유지 위한 전쟁범죄, 좌시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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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에세이·최성주>정권 유지 위한 전쟁범죄, 좌시해선 안된다
최성주 원자력대학원 교수·전 주폴란드 대사
89)인권보호와 국제형사재판소
  • 입력 : 2024. 06.25(화) 16:43
최성주 교수
인류는 현재 두 개의 전쟁으로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불법 침공으로 야기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그리고 작년 10월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그것이다. 그런데, 전쟁법의 3대 원칙은 군사적 필요성과 비례성 및 식별이므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은 전쟁법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최근 들어, 러시아 못지않게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비난받는 이유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으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스러지기 때문이다. 1945년에 설립된 유엔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전제하면서 모든 침략전쟁을 불법화하고 있다.

국제법의 근본원칙은 주권 존중 및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다. 가장 보편적인 국제기구인 유엔은 193개의 주권국가로 구성되어 있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인류는 전쟁 불법화와 민간인 보호를 국제인도법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 핵심은 모든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라는 것이고, 전쟁을 수행하는 상황에서도 부녀자와 아동 등 민간인을 최대한 보호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및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 민간인 피해 상황을 계속 접하고 있다. 2년 반 가까이 불법적인 전쟁을 지시 및 지휘하고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미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최근 ICC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및 신와르 하마스 지도자 등에 대해 체포영장 발부를 요청했다.

ICC의 근거법인 ‘로마 규정(Rome Statute)’은 1998년 7월 로마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채택되었고, 2002년 7월에 발효되었다. 현재 로마 규정의 당사국은 124개국이며, 대한민국은 2002년 11월 이래 당사국이다. 2003년 3월 헤이그에 설치된 ICC는 로마 규정에 의거하여, 집단살해죄 및 반인도죄(反人道罪), 전쟁범죄, 그리고 침략범죄에 대해 관할권을 갖는다. 그런데, 여타 국제조약과 마찬가지로, 로마 규정도 이를 비준한 국가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로마 규정 13.B.조는 유엔 안보리의 요청이 있을 경우, 비당사국에 대해서도 ICC의 관할권을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안보리는 2011년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에 대해 ICC의 수사를 요구하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다. 리비아는 2005년 수단 다르푸르 분쟁에 이어, 두 번째로 안보리의 결정에 따라 ICC에 관할권이 부여된 경우다. ICC는 작년 3월 푸틴 대통령에 대해 로마 규정 8조에 의거하여 체포영장을 발부하였다. 한국을 비롯한 ICC 당사국들은 푸틴이 그들의 영토 및 영해, 영공으로 진입할 경우, 그를 체포하여 ICC에 인도해야 한다. 한편, ICC는 국제사법재판소(ICJ)와 혼동되기도 한다. 그런데, 유엔의 사법기관인 ICJ는 국가 간의 법적 분쟁만을 취급하기 때문에, 국가가 아닌 개인(즉, 정치 및 군사 책임자)을 형사적으로 처벌하기 위한 ICC와는 다르다.

ICC의 한계는 바로 국제법의 한계다. 국제법의 핵심을 이루는 다자 조약은 이를 비준한 국가들에게만 유효하다. 이는 개별 국가의 주권 존중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각국의 주권 존중 없이는 국제법 질서는 물론, 국제평화 자체도 위협받을 것이다. 또한, 유엔 안보리가 로마 규정 비당사국에 대해 ICC의 관할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상임이사국 전체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는 여전히 국가 주권이 우선시되고 있다. 그렇지만, 기본권(특히, 생명권과 존엄권)은 개인에게 주어진 불가양(不可讓)의 권리다. 전쟁범죄, 반인도죄 및 집단살해죄는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행위다. 이러한 극악한 범죄가 묵인되거나 면책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곧 인류의 양심과 집단지성에도 반하는 것이다. 국가 주권이라는 ‘현실’ 앞에서 인류의 양심이라는 ‘당위’가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과 규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민간인에 대한 무력 공격을 지속하고 있다. ICC가 인류의 양심을 대변하여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이와 동시에, ICC가 북한 김씨 왕조의 악행(惡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길 바란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철저히 무시하는 북한 정권은 ICC 관할 대상범죄 중 최소한 ‘반인도죄’를 저지르고 있다. 민생과 기본권을 도외시한 채, 정권 유지를 위한 핵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하는 행위는 인도주의에 반하는 중범죄다. 인권과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우리가 북한 주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당위’에 눈을 감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