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에세이>수필은 굴렁쇠가 아니고 동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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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에세이>수필은 굴렁쇠가 아니고 동굴테다
오덕렬 수필가 전 광주문인협회장
  • 입력 : 2024. 06.13(목) 16:29
오덕렬 수필가 전 광주문인협회장
1m70㎝의 키는 10㎝가 부족했다. 어머니를 닮아 온화한 얼굴이지만 입은 1㎝만 더 찢어졌으면 남성다웠을 텐데…. 지금도 날을 새면서 작품을 쓰는 때가 있다. 평생 병원을 모르고 회혼례 치르며 장수하신 부모님 덕이다. 6·25전쟁이 터졌다. B29 폭격기가 ‘쌕쌕쌕’ 저공비행을 하면 방공호에 숨었다. 학교에 입학했지만 곧 못 다니게 되고 말았다. 공부 대신 소깔을 베고, 산에서 땔나무도 했다. 휴전이 되자 불타버린 학교 운동장에 천막교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그 교실도 부족하여 동네 재각 마루에서 돌멩이를 주워 덧셈과 뺄셈을 배웠다.

고학년이 되었다. 나는 동굴테를 무척 굴리고 싶었다. 아버지께서 뒷간에 잠자고 있던 똥장군의 맨 테를 벗겨 주었다. 거미집이 묻어 있고, 써금써금했다. 나는 그것도 오구감탕시럽게 여겼다. 마당에서 맨손으로 ‘아나, 굴러라!’ 앞으로 던져보았다. 곧바로 넘어지고 말았다. 너무 가벼워 호따깨비 같았기 때문이다. 집 앞 둠벙에 던져두고 하룻밤을 물에 불렸다. 똥장군의 테는 그때야 똥찌꺼기를 벗어버리고, 오래 묵은 대나무의 불그레한 빛깔을 띠었다. 그렇다 해도 바퀴가 키만한 굴렁쇠를 따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Y자 모양의 굴렁대 대신 고무줄을 생각했다. 한쪽을 동굴테에 매고, 다른 쪽은 막대기 끝에 묶었다. 고무줄의 낭창낭창한 탄력을 이용하여 왼쪽 오른쪽으로 번갈아서 돌리면 전진이다. 처음엔 마음과 같지 않았다. 밥 먹듯이 연습을 해대니 조금씩 돌릴 수 있었다. 꿈속에서도 돌리는 연습을 했다. 꿈에서 깬 날 아침이었다. 동굴테는 앞으로 굴러가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뱅뱅 돌기도 하고, 공중에서 전진도, 후진도 가능했다. 굴렁쇠가 건널 수 없는 학굣길의 평림천 징검다리를 물위로 건널 수도 있었다.

5학년 때였을 것이다. 방학 숙제로 동시를 지어 오라 했다. 보도 듣도 못한 동시를 어떻게 짓는단 말인가?. 고등학생인 동네 형에게 부탁했다. ‘개미’라는 동시를 지어 주었다. 개미는 작지만 부지런함을 칭찬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모른 체, 그냥 숙제로 바쳤다. “국어를 잘하는 급장이라 다르구나!” 담임선생님은 칭찬하며, 내가 낸 숙제로 동시 수업을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지은 동시가 아님을 뻔히 아셨을 것이다. 그때 나는 마음먹었다. ‘시인이 되어야지, 책도 내야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닐까?’ 내가 교사가 되었을 때, 어릴 적 다짐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정년을 하고도 맨 날 가방을 들고 다닌다, 부모님 논밭에 가실 때, 삽과 호미를 가지고 가듯이. 책과 메모장이 가방을 지킨다. 문학의 재료는 오직 단어뿐이지 않는가. ‘문학’이란 낱말을 찾아본다. “생각이나 감정을 상상의 힘을 빌려 글자로 나타낸 예술과 그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과 이들에 관한 평론 같은 것을 포함한다.”(국어사전) 상상! 상상은 글자 형상부터 ‘사+ㅇ’이다. ‘생각(思)’ 밑에 동굴테가 달린 모양이다. 생각을 굴리면 상상 아닌가?

군 생활 3년을 마치고 복직 했다. 그해 가을 문교부 시행 고시 검정을 거쳐 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근무할 때였다. 윤오영 선생의 ‘수필문학입문’이 출간되었다. 손에 넣고,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이때가 나에게는 문청시대인 셈이었다. 수필에 눈을 뜨고, 윤오영 선생을 사숙하고…. “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수필을 쓸 수는 없다”는 구절도 거기서 읽었다. 동굴테가 하늘로 떠오를 때 수필도 동행했다. 구름 속을 날고, 어린왕자의 별 소혹성 B612호에도 가보고, 붕새가 되어 구만 리 장천을 날아보기도 했다.

여러 문학 장르 중에서 ‘수필’과 인연을 맺고 평생을 함께 산다. 지금도 수필 공부에 시간 없다는 시간 타령을 하면서. 늦게야 수필은 문학 중에 굴렁쇠가 아닌 동굴테인 것을 깨달았다. 동굴테 속에는 둘금 둘금 사려진 나이테 같은 내 행적이 살고 있겠다. 수필과 한 몸 되어 돌고 도는 변화 속에 ‘창작수필’이 되고, 지금은 ‘수필시’까지 진화했다. 건반 없는 내 풍금이 화음을 낼 때까지 동굴테는 굴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