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승우>카터 美대통령, 80년 광주 유혈진압 결정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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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고승우>카터 美대통령, 80년 광주 유혈진압 결정 이유는
고승우(80년5월민주화투쟁언론인회 상임대표·언론사회학박사)
  • 입력 : 2024. 05.27(월) 18:48
고승우 대표
‘광주’가 44년을 맞았다. 여야 정치권이 ‘광주’를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겠다고 나서지만 아직 적지 않은 부분의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광주’의 유혈진압을 미국 대통령이 결정한 부분이다. 인권 대통령으로 알려진 카터는 왜 그런 참혹한 짓을 저질렀을까? 평화적인 다른 방법도 가능했을 터인데 그는 왜 가장 비인도적인 조치를 취했을까?

카터는,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에서 시민항쟁을 유발한 며칠 후인 1980년 5월 22일 백악관에서 보좌진이 다수 참가한 가운데 긴급안보회의를 소집해 광주 시민들을 한국군이 무력진압토록 하는 결정을 했다. 이는 즉각 주한미군사령관인 위컴 대장에게 하달됐다. 그 후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카터가 반인도주의적인 시민학살을 유발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군사행동을 결정한 이유는 아직껏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이 제3국 시민소요 사태에 대해 직접 군 진압 결정을 내리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카터의 결정은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그것은 미국의 안보가 위협받는 최고 수준의 위기 상황으로 판단한 결과기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미국이 자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아닐 경우 백악관이 나서는 식의 호들갑을 떨지 않는 것이 미국의 법치이기 때문이다.

1980년 광주항쟁 당시 카터가 광주 시민을 무력 진압하도록 결정한 핵심적 이유에 대한 것은 미국정부가 비밀로 분류해놓아 공개된 적이 없다. 그러나 당시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핵전략 등을 살펴 퍼즐 맞추기를 하면 카터의 결정이 내려진 정황증거가 확연해진다. ‘광주’는 미국의 핵전략에 대한 미 대통령의 책무, 한미동맹, 미 전술핵무기 광주 미 공군기지 배치 등의 환경요인이 빚어낸 역사적 참극이었다는 점이다. 미국이 해외에 배치한 핵무기에 대한 최종 책임은 미 대통령에게 있다는 핵전략 매뉴얼에 따라 카터의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1960년대 초부터 남한에 수 많은 핵폭탄을 배치했다. 핵무기 저장소는 오산, 군산, 광주 미 공군 기지 등이었다. 미국이 남한에 배치한 전술 핵무기는 북한군의 기습 공격에 대비해 즉각 사용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준비 태세를 유지했고 전면 핵전쟁을 관장하는 단일통합작전계획(SIOP·the Single Integrated Operating Plan)의 한 부분으로 취급했다. 이에 따라 군산 미 공군기지에 배치된 제8전술전투비행단이 핵무기가 장착된 4대의 팬텀 전투기가 항상 활주로에 대기, 중국 북경과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를 타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SIOP는 소련과 중국, 북한 등 적대국을 대상으로 1961년부터 2003년까지 냉전 시대에 미국이 집행한 전략적 핵전쟁 계획으로 미국의 모든 전략 핵무기(육군, 해군, 공군)의 사용을 하나의 포괄적인 계획 아래 통합했다. 이는 서로 다른 군종의 핵무기 사용을 조정하여 중복을 방지하고, 전략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SIOP는 이상에서와 같이 적에 의한 핵 공격에 대한 반격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 선제공격을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거기에는 수천 개의 타겟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타겟은 군사 기지, 정부 시설, 산업 시설 등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목표물 등이었다.

1980년 5월 카터 미 대통령이 광주 시민항쟁을 한국군이 무력 진압토록 결정한 것은 SIOP의 일부분인 광주 미공군 기지 핵무기가 공격받거나 적대세력의 수중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초비상 상황으로 판단한 결과로 추정된다. ‘광주’ 발생 초기 신군부는 간첩을 현장에서 체포했다고 발표하는 등 북한 개입 또는 배후설을 공식 발표했었다. 광주 미 공군기지가 미국의 관리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은 미국 세계핵전략이 위협받는 중대한 국면에 처하는 국가안보위기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핵무기 정책과 그 안전 보관과 사용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진다. 대통령은 미국의 핵무기 명령 체계의 최고 지휘관으로서, 핵무기의 생산, 보유, 배치 등에 대한 정책과 안전한 관리와 적절한 사용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을 갖고 있다.

1980년 5월 22일 주한미군사령관 위컴은 카터의 결정에 따라 한미연합사 소속의 한국군 20사단의 네 개 연대를 ‘폭동진압(Riot Control)’용으로 허용해 달라는 신군부의 요청을 승인해주었으며, 데프콘3 수준의 경계태세를 발동해 신군부의 광주 진압을 전후방에서 지원해주었다.

미국은 자국 핵무기에 대해 NCND,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카터도 그에 따라 ‘광주’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은 전두환 등 신군부가 1980년 당시 광주 미 공군기지의 핵무기에 대한 미국의 안보조치가 어떻게 내려질 것인가 하는 것을 미리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웬만한 군 전문가라면 SIOP 등 미국의 핵정책에 미뤄볼 때 카터가 ‘광주’와 관련해 취할 결정이 어떤 것일까 추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전두환과 같은 정치군인들은 미국 현지 파견과 교육 기회를 통해 그것을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란 점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전두환이 ‘광주’를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찬탈한 뒤 미국이 그 정통성을 인정한 것도 광주 미 공군기지의 미국 핵무기를 대입하면 쉽게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미 대통령과 광주 미공군기지의 핵무기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던 전두환 일당이 정권 찬탈의 사전 조치로 광주를 공포정치를 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군부는 미국 핵전략의 매뉴얼을 알고 광주를 공포정치의 현장으로 지목, 도발했다면, 그것이 진실로 밝혀진다면 ‘광주’ 역사의 첫 부분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1980년은 물론 오늘날까지 북한을 구실삼아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고 일본의 핵무장을 저지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미군의 특혜가 보장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대북선제타격 전략 등을 세워놓고 있다. 2024년 5월 현재 미국의 북한 핵전략 역시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하는 미국식 법치에 의해 결정되고 집행되고 있다.

미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한반도 전면전쟁 가능성에 항상 대비하고 있으며 남북한 주민들이 그 때문에 희생당하는 것은 그들의 최우선 고려사항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의 한미동맹을 핵심으로 한 한미관계는 1980년 ‘광주’가 발생할 당시의 군사 환경과 흡사하다. ‘광주’가 발생했던 1980년 당시의 한미동맹과 미국 핵전략은 오늘날에도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광주’와 같은 유사한 참극이 재발할 조건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광주’는 현재 진행형이라 하겠다.

PS:필자는 카터 전 대통령에게 위의 사실에 관한 문의 편지를 2024년 4월 말 이후 두 차례 발송했으나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가 고령인 점을 고려할 때 진실을 당사자가 밝힐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