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빛의 사람 최흥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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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빛의 사람 최흥종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4. 05.27(월) 17:34
최도철 국장
 개화기 광주 최초의 영적 지도자, ‘오방(五放) 최흥종’. 한 평생을 한센병 퇴치와 빈민구제, 독립운동, 교육활동 등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오방 선생은 광주의 정신적 지주이자 근대 광주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 오방 최흥종기념관 서문에서.

 한국의 몽마르뜨라 불리는 양림동은 느릿느릿 한 바퀴를 돌아도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광주의 근ㆍ현대 역사와 문화에 있어 양림동이 차지하는 자리는 결코 작지 않다.

100여 년 전만 해도 돌림병이나 괴질로 숨진 가여운 아이들을 묻던 풍장터였던 양림산 일대가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라 불리는 데는 1904년 광주 땅을 밟은 선교사들의 영향이 컸다.

그들은 제중원을 설립해 환자들을 돌봤고, 목포 정명ㆍ영흥학교, 광주 숭일ㆍ수피아 학교 등을 세웠다. 허허벌판이었던 양림산 자락에 북문안교회를 세운 것도 이 무렵이다. 스물 세 분의 선교사가 묻힌 양림동을 광주의 예루살렘으로 부르는 이유이다.

개화의 마중물이 됐던 이들 선교사를 만나 극적으로 인생이 바뀐 이가 있다. 광주땅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해야 할 최흥종 선생이다.

‘무쇠주먹’, ‘최망치’라 불리며 광주 일대를 주름잡는 싸움꾼으로 살던 최흥종은 광주에서 열린 첫 기독 성례인 성탄 예배에 참석하면서 회심(回心)을 하고, 빛의 사람으로 새로운 인생길을 걷게 된다.

이후 그는 광주 최초 목회자로, 독립운동가로, 교육가로, 한센병환자 구호사업가로 살았다. ‘낮은 자와 함께하는 삶’을 살았던 최흥종의 일대기에는 지금도 회자되는 전설같은 일화가 있다. 1933년 나환자 150명을 이끌고, 광주에서 경성 조선총독부까지 ‘구라(救癩) 대행진’을 펼쳐 소록도갱생원의 확장을 얻어낸 사건이다.

오방 선생을 기억하려는 행사들이 지역에서 잇따라 열린다. 호남영성연구원과 오방 최흥종기념관은 28일 광주YMCA에서 ‘오방 최흥종의 환대와 광주 정신’을 주제로 공동 세미나를 개최한다.

오는 6월 1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제2회 동구 무등산 인문축제-인문For:rest’에서도 오방 최흥종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들어 있다.

2·8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언론인 석아 최원순, 무등산에 농업학교를 일구고 ‘하늘과 땅과 사람을 사랑하자’는 삼애(三愛)를 가르쳤던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과 함께 최흥종의 생애와 정신을 기리는 인문축제다.

희생과 배려, 섬김으로 광주정신의 원형을 보여준 최흥종 선생의 삶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관조(觀照)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