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이명노>용감한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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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단상·이명노>용감한 사람이 필요하다
이명노 광주시의원
  • 입력 : 2024. 05.23(목) 17:40
이명노 광주시의원
2024년 5월18일, 국가보훈부 주관의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의원들은 기념사를 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침묵시위를 했다. ‘5/18/헌/법/전/문/수/록’이 각각 적힌 여덟 장의 종이는 여덟 명의 주머니에 한 장씩 숨겨진 채 경호처의 검문검색을 통과할 수 있었고, 이내 펼쳐져 완성된 문장은 시민들의 뜨거운 격려와 박수를 받았다.

수차례 충격을 준 현 정권의 트레이드 마크 ‘입틀막’으로 끌려 나가거나 격한 제압을 예상했으나 그렇지 않았던 건 오롯이 주변 시민들과 유족들의 저항 덕분이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손피켓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와 제지하는 경호원들을 보고, “옳은 말 하는데 내버려 두세요!”, “가만히 두세요!”

라고 외치며 방어 해주신 덕에 기념사를 마칠 때까지 대통령의 눈에 ‘5·18 헌법 전문 수록’이라는 국민의 요구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기념사가 끝난 뒤 박수와 환호는 대통령이 아니라 오히려 의원들이 받았고 언론에서도 이 일화를 속보로 다뤄주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헌법전문수록을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피켓을 들고있는 의원들에게 호응하는 시민을 봐서 검토해 보겠다든가 하는 메시지라도 줄법하지만, 그 정도 정무적 판단을 기대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보다 이날 시민들께서 주신 격려 중 뇌리를 스친 단어가 있어 기고문에 적어본다.

‘용기’였다.

기념식을 마치고 “대단한 용기였다. 우리 시의원들 자랑스럽다.”라는 시민들의 말씀에 조금 갸우뚱했다. 용기를 가지고 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다른 위원들의 생각은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정다은 위원장이 이 프로젝트를 제안할 때, 그렇게 해서라도 국민의 뜻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고민 없이 나섰을 뿐이다.

용기(勇氣)의 사전적 의미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다. 겁나지 않았던가 돌아본다. 지방의원이 대통령에게 직접 뜻을 전할 기회란 사실상 없는 것을 이렇게라도 표현하자는 도전이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피켓을 들고 비장하게 서 있었다. 돌아보니 얼추 용기였다.

민원을 듣고 해결할 때나 회의장에서 열띤 토론을 벌일 때, 열심히 다니며 주민들을 만날 때 받은 칭찬과는 사뭇 다른 환호가 벅차고도 머쓱했다. 어쩌면 그만큼 시민들이 기대한 모습이리라, 가려운 곳을 긁어드렸던 덕이리라 짐작한다.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고 땀 흘려 노력하는 모습도 좋지만, 용감한 행동도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용감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멀게는 고려의 문신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붓대에 목화씨를 감춰 들여왔던 역사도,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이 당대에 전한 울림도, 총칼과 군홧발에도 민주화의 열망을 굽히지 않았던 80년 5월 열사들의 희생도. 누군가의 크고 작은 용기가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배워 알고 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의 완연한 정의는 실현되지 않아서 부당한 사회구조에 짓눌려 누군가는 고통받고 있다. 이때 국민이 권한을 맡겨준 대리인의 역할은 자명하다. 용감한 영웅이 돼야 한다. 앞으로 정치인생을 살아가며 이날의 용기를 잊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마침 일주일 뒤면 용기를 보여줘야 할 새로운 인물들이 국민 곁에 다가간다. 임기를 시작할 300명의 국회의원 당선인도 반드시 유념하길 바란다. 부당한 일을 마주할 때 피하지 말고 맞서주시라. 적당히 좋은 사람이 아니라 국민이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부디 사리지 말고 용감하게 나서는 사람이 돼주시라. 아직 세상은 더 나아져야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