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조반니’ 공연 역사상 최고의 출연진이라고 칭송받은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1957~58 시즌 공연 장면.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
현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매스미디어’는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자와 이를 갖지 못한 평범한 다수의 시민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꺼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드물게 약자가 이기는 일은 언론을 통해 ‘정의는 살아있다’라는 수사 어구와 함께 지금 이 시대가 공정한 사회인 양 떠들어댄다. 대다수 시민은 주어진 기회를 독식하는 ‘가진 자’의 대물림을 보며 사회주의, 자본주의라는 이념을 넘어서 현실 사회의 변화를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물질과 권력으로 점철돼 버린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계급 간의 이동은 요원하고 이로 말미암아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은 좀처럼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300여 년 전 18세기는 현대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다. 이 시기 오페라 작곡가 모짜르트(W. A. Mozart, 1756~1791)는 당시 귀족과 평민의 갈등을 극음악 안에 기가 막히게 담았다.
‘돈 조반니’ 역의 전설적인 베이스 에치오 핀자가 열연하고 있다.(1942~43년 공연)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
카사노바로 주목을 받은 돈 조반니라는 인물은 귀족으로 사회에서는 비난과 지탄받는 행실을 저지르는 난봉꾼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악행을 일삼으며 무한 욕망을 추구하는데 극 속에서 성욕을 맘껏 과시하는 그의 모습은 한편으로 비난을 넘어서 남성들에게 부러움을 사기까지 했다. 성적 욕구를 향한 그의 막무가내 행동은 나아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권력을 포함한 모든 욕구가 확장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하지만 ‘권선징악’, ‘해피엔딩’이라는 오페라 부파의 정해진 룰에 의해 모짜르트의 돈 조반니는 응징을 받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형벌을 받는 돈 조반니. (2011 시즌)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
현대적 연출로 각색된 오페라 ‘돈 조반니’.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2023년 공연 장면. |
이와 같은 레포렐로의 이야기를 미뤄 보면 이 오페라는 돈 조반니를 자유분방하게 삶을 즐기는 인간, 즉 성적 욕망을 어떤 제재나 죄악감 없이 즐기는 인간으로 그렸다. 그렇다고 그는 18세기 주류 사회 귀족 남성의 모습을 미화하고 영웅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돈 조반니를 지옥에 떨어뜨리고, 계몽주의 사회를 꿈꾸며, 불합리한 사회에 관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는 당시 방탕을 일삼을 수 있도록 한 특권적 계급사회 구조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용감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돈 조반니 이야기는 모짜르트의 작품이 탄생하기 전 10년 동안 7편의 오페라가 나왔을 정도로 당시에는 대중적인 소재였다. 따라서 이를 작곡하는 과정에서 불합리한 사회 계급 구조와 여성 인권 등을 부르짖었던 <피가로의 결혼>에서 나타난 정치적 위험은 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짜르트의 <돈 조반니>는 우리가 흔히 접한 코미디 오페라이기보다는 작곡 당시 비밀결사 조직인 ‘프리메이슨’이던 그가 생각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이 가득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오페라 ‘돈 조반니’를 작곡한 모짜르트. 출처 위키피디아 |
시대 정신을 등한시하고 특권을 가지고 사회 구조를 자신들에 맞게 고착화하려는 오류 세력과 이러한 불합리함을 극복하려는 시민과의 투쟁은 인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존재해 왔다. 훗날 시민이 주류로 등장한 이후 이들에게 예술은 끊임없이 응원과 방향성을 제시하며 함께 성장했으며, 그중 오페라는 과거 가장 확장력이 강한 공연 문화예술로서 사회변화를 이끄는 매개체였다. 지금은 오페라에서 확장된 다양한 공연 예술이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뿌리라 할 수 있는 오페라 역시 시민을 위로하고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 세상을 투영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오페라의 융성이 문화 광주의 융성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광주에 수많은 오페라가 올려진다. 그 안에서 재미뿐만 아니라, 작품 안에 담긴 깊은 철학을 음미하며 공연장을 찾는다면, 더욱 감동이 배가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 도시 광주’의 중심에 지상최대의 공연 예술인 광주의 오페라가 있다.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