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일의 색채인문학>그리스도, 순례자들 모두 회색 옷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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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박현일의 색채인문학>그리스도, 순례자들 모두 회색 옷 입어
(248) 회색과 시대
박현일 문화예술 기획자·철학박사·미학전공
  • 입력 : 2024. 05.21(화) 18:24
●색채와 종교 그리고 연령

서기 1,000년경 수도회의 색이 확정되었는데, 회색과 갈색은 청빈을 요구하는 수도회의 색이 되었다. 회색 수도복을 입은 시토(Cistercian, 1098년에 설립된 로마 가톨릭 수도회를 말함) 교단의 수도사들은 교회의 장식에 유채색을 사용하지 않는다. 교회의 창문 장식에도 유채색이 없다. 그들은 유채색의 광선이 경건한 마음을 흩트린다고 생각하여 교회의 벽과 창문 그리고 장식까지 모두 회색만을 사용하였다.

청빈은 수도회마다 다르게 해석되지만 ‘높은 청빈’, ‘더 높은 청빈’, ‘최상의 청빈’ 3가지가 있다. 첫 번째, ‘높은 청빈’은 수도회에 모든 종류의 소유를 허락한다. 두 번째, ‘더 높은 청빈’은 부동산은 허락하지 않고 동산만 허락했다. 세 번째, ‘최상의 청빈’은 모든 종류의 소유를 금했다. 이 수도회는 카푸친(Capuchin) 수도회와 시토 수도회이며, 회색 수도복을 입는다.

그리스도가 입었던 옷은 회색이다. 순례자들도 회색 옷을 입었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좁고 험한 길’도 회색이다.

노년기에는 약한 채도의 작은 대비로, 회색이나 검정 그리고 갈색이 나타난다. 회색은 힘이 없는 색이며, 미화되지 않은 노령 그 자체의 색이다. 서양의 경우 회색은 노년을 연상시킨다.

모세는 “회색 머리 앞에서 일어나 노인을 공경하라”고 명령했다.

회색은 ‘경험 많은’, ‘존경할 만한’, ‘현명함’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울적한 상태에 빠진 우울병 환자가 그리는 그림에는 검정, 회색, 다갈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알슐러(Alschuler)는 해트윅(Hattwick)와 함께 쓴 저서인 그림과 개성(Painting and personality), University of Chicago, 1947.)에서 유아 3세부터 5세까지 색채표현의 즐거움과 정서적인 경향을 제시하였다. 검정과 갈색 그리고 회색을 사용하는 아이들은 어떤 내적 고민거리를 표출하는 것으로 보았다. 회색뿐인 유아의 그림은 정서적 결핍이나 인간관계가 나쁜 것으로 해석된다.

●색채와 문장

문장(紋章)에서 은색은 겸손, 정직, 순수, 순결을 상징하며, 방패에 그려 넣은 달의 문장에도 은색이 사용된다.

문장의 색이 깃발의 색으로 변할 때 은색은 하양이 되며, 은색의 상징은 평화의 색이 된다.

●독일

‘그리조이스(griseus)’는 독일 북부지방의 고어로 ‘회색’을 뜻함과 동시에 ‘사소하다’, ‘중요하지 않다’라는 의미이다. 특히 회색 옷은 갈색 옷과 같이 염색하지 않은 직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황제 카를대제(Karl der Grosse)의 연대기에서는 농부에게 회색 옷을 권했다. 동화 속의 공주 신데렐라(Cinderella)는 회색 옷을 입었으며, 그녀의 삶도 회색이었다.

회색에서 나온 독일 이름으로는 ‘신디(Cindy)’, ‘첼다(Zelda)’, ‘그리젤디스(Griseldis)’도 신데렐라에서 유래한 여자 이름이다. 회색 이름들은 비참한 삶을 강요하는 빈곤과 겸손을 상징한다.

1999년에 제작된 전화번호부를 참고로, 독일에서 사용한 색이름이 성으로 사용한 예이다. 회색(그라우 Grau)은 4,056개였고, 은색(질버 Silber)은 501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