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호 국가보안법 구속 ‘민중미술’ 그림 독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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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제1호 국가보안법 구속 ‘민중미술’ 그림 독일 간다
이상호·전정호 ‘백두 산자락…’
2인전 ‘저항으로서 민중미술’
7월까지 베를린 현지 갤러리
"분단 경험 동질적 아픔 공유"
  • 입력 : 2024. 05.15(수) 16:54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독일 베를린에서 이상호·전정호 2인전 ‘저항으로서 민중미술’이 오는 7월 7일까지 열린다. 사진은 왼쪽부터 전시를 기획한 유재현 기획자, 이상호·전정호 화백, 정현주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 관장. 도선인 기자
광주·전남 대표 민중미술 화백 이상호, 전정호가 그린 걸개그림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는 1987년 예술인이 처음 국가보안법 구속으로 이어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대학 선후배 사이였던 이 둘은 당시 6월항쟁 정국 속에서 반정권 색채가 강한 걸개그림을 완성, 광주·서울·제주 등에서 순회전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길이 120㎝에 이르는 화폭 속에는 폭압적인 군사정권에 분노한 민중의 모습과 함께 이한열 열사의 노제 현장, 민중의 상징 대나무, 찢긴 성조기, 희화화된 전두환과 노태우·레이건(당시 미국 대통령)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 모두가 자주민주주의를 열망했던 1987년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이상호·전정호 2005년 작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
그림은 서울 인사동 한 갤러리에 걸려 전시됐지만, 강렬한 그림체 때문에 곧바로 인근 종로경찰서 표적이 됐다. 제주도 전시를 위해 그림을 옮기던 중 무단 탈취됐고, 두 화백은 수배령이 떨어진 후 검거됐다. 그들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혹독한 폭행과 고문에 시달렸다. 예술인 첫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 사례였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라는 상징적 의미가 큰 이 작품을 수소문했지만, 그림은 이적표현물로 판결받아 소각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억을 더듬어 복원시킨 것이 바로 2005년 작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다.

이 작품이 이번엔 독일 베를린으로 긴 여정을 앞두고 있다. 이상호·전정호 2인전 ‘저항으로서 민중미술’이 15일부터 7월 7일까지 베를린 현지에 있는 갤러리 ‘마인블라우 프로젝트라움(MEINBLAU Projektraum)’에서 열리는 가운데 출품작으로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독일Art5예술협회 소속 유재현 총괄디렉터와 양림동에 자리한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의 정현주 관장이 기획한 자리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베를린 페퍼베르크재단 등 민간후원으로만 진행돼 그 의미를 더한다.

전시에는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를 중심으로 1층과 2층에 두 작가의 시대별 주요 작업이 20여점이 걸린다. 이상호 작가의 경우 포승줄에 묶인 친일파 인사와 5월 학살자의 초상을 기록한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등 기존 주요작품과 함께 역사의식과 연관된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정호 작가는 대표 판화작품과 함께 국가폭력으로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얀마 군부 쿠데타, 기후위기 등을 주제로 한 신작을 선보인다.

특히 전시가 진행되는 베를린은 과거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된 중심지였다는 지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전시를 기획한 유재현 디렉터는 “베를린은 과거 분단을 경험한 도시로,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며 “분단을 경험했다는 측면에서 시민정서가 정치적 이슈에 대한 문화예술의 이해도가 높다. 무엇보다 전쟁을 반대하고 궁극적인 평화를 꿈꾼다는 점이 광주의 민중미술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이상호 작가와 전정호 작가는 “우리는 아직 극복하지 못한 분단의 아픔을 이겨낸 독일 베를린에서 전시하게 돼 뜻깊다”며 “독일 시민들이 평화로 이어지는 광주정신의 궁극적인 함의와 한반도 통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