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 의대정원 조정… 갈길 잃은 의료 컨트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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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주먹구구’ 의대정원 조정… 갈길 잃은 의료 컨트롤
총선이후 의료개혁 담당자 사의
정부, ‘증원 50% 자율감축’ 카드
의료계 “원점재검토 외 복귀없어“
지역민 ‘정부 책임론’ 목소리도↑
전문가 “대통령 직접 답할 차례”
  • 입력 : 2024. 04.21(일) 18:20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의정갈등이 장기화 되는 가운데 최근 조선대병원 앞 쉼터에서 의료진과 환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양배 기자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 해결이 갈 길을 잃었다. 정부는 총선 이후 내년도에 한해 당초 증원 목표의 절반인 1000명(최소 증원분)까지 줄일수 있는 대학별 자율 조정안을 제시했지만 의료계는 ‘주먹구구식 대처’라며 제안을 거부했다. 25일부터 의대 교수들의 병원 이탈도 점쳐지고 있어 의료대란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시민들은 “여기까지 몰고 온 행정당국의 책임”을 강조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돌파구 마련을 촉구했다.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총선 참패 후 의료개혁을 추진해 온 정부의 ‘컨트롤타워’는 사실상 멈춤 상태다. 의사 집단행동으로 꾸려진 중대본 수장인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 대통령실 이관섭 비서실장과 의료개혁을 담당해 온 장상윤 사회수석·성태윤 정책실장이 잇따라 사의를 표명했다. ‘의정갈등 해결 동력’을 잃은 셈이다. 이들의 사퇴 이유는 국정·인적 쇄신이었다.

이 사이 정부는 정국 수습을 위해 ‘증원 50% 자율감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 18일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충남대·충북대·제주대 등 6개 국립대 총장이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에서 대학별 여건을 고려한 신입생 모집안(의대 정원의 50%~100% 범위 내 모집)이 필요하다”고 건의한 내용을 수락한 것이다.

이는 정부가 ‘기존 2000명 증원’에서 한발 물러난 것인데, 배경에는 의대 정원 증원의 큰 틀을 바꾸지 않으면서 대학이 증원분을 조율할 수 있도록 하는 실리적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내년 의대 증원 규모는 최대 1000명까지 줄어들 수 있게 됐다.

정부안이 발표되자 의료계는 일제히 ‘수용 불가’ 목소리를 냈다. 주먹구구식 제안만으로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차기 회장은 “이번 결정은 정부가 추진한 ‘2000명 증원’이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방증”이라며 “전공의들은 줄곧 ‘의대증원은 부당하고 필수의료 패키지가 폐기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전제가 달성돼야 사태가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 의료계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익명을 요청한 광주 한 대학병원 전공의는 “의대 정원 1000명 증원도 정말 많은 숫자다. ‘절반 줄여줄 테니 그만하라’고 기만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의사들을 ‘정치적 이슈용’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며 “전면 백지화 상태의 재논의가 없다면, 전공의들이 현장에 복귀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장기화되는 의정갈등에 환자 피해도 계속되고 있다.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이달 11일까지 전국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는 총 2264건으로 집계됐다. 수술지연이 426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 밖에 진료 차질(119건), 진료 거절(79건), 입원 지연(28건) 등이 뒤를 이었다.

25일부터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효력이 발휘될 예정이어서 의료붕괴·피해는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지역선 전남대병원(283명 중 92명)·조선대병원(161명 중 43명)에서 사직서 제출이 있었다.

지역민들의 걱정도 커져만 간다. 현장에선 해결 동력을 상실한 정부가 되레 사태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대병원에 내원 중인 한 임산부는 “검진차 방문할 때마다 전문의 없이 썰렁한 병원 모습이 무척 불안했다. ‘총선이 끝나면 나아지겠지’하는 기대로 버텼다”며 “그런데 상황이 전보다 더 혼란스러워지는 모양새다. 이전엔 ‘무책임한 전문의’들을 원망했는데, 이제는 오락가락한 정부가 더 문제다. (의사 부재로) 수술이 불가능하다면 자괴감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 증원 사태는 이제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할 문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지역 의료계 관계자는 “국민들이 장기화하는 의정대립에 지쳐가고 있다. 공공의료도 인력 차출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정부의 ‘의대 증원 50% 자율감축’ 카드는 합리적이지 않다. 되레 본인들의 업무를 대학교 총장에 전가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가 국정·인적 쇄신을 천명한 만큼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대통령이 현명한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대한민국 의료 붕괴를 막을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21일 정부의 의료개혁을 구체화하는 역할을 하게 될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에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을 선임했다. 특위는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를 골자로 하는 ‘4대 정책 패키지’를 연구·추진한다. 다만 대척점에 서 있는 대한의사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의 참여가 없어 ‘반쪽짜리 특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