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등이 25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5·18 조사위보고서 평가 및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나건호 기자 |
25일 5·18기념재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민변) 등은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5·18조사위보고서 평가 및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조사위 보고서의 문제점과 제안 사항 등을 논의했다.
●게엄군 ‘면죄부’ 주는 내용 기재 ‘왜곡 빌미’
민변과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등은 ‘조사위 보고서 검토의견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보고서에 계엄군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내용이 다수 기재돼 있어 왜곡의 빌미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우선 조사위는 ‘무기고 피탈 시점’을 규명하지 못했는데 이는 1980년 5월21일 도청 앞 발포에 대해 ‘시위대가 먼저 무기고를 습격, 무장해 자위권을 발동했다’는 계엄군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조사위는 당시 나주경찰 경무과장으로부터 “계엄군의 전남도청 집단 발포 후 21일 오후 1시30분께 시위대가 나주경찰 무기고에 접근했고, 무기가 없자 다시 금성파출소 무기고로 접근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나 진술과 상반되는 치안본부 징계의결서가 발견됨에 따라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다만, 지난 2018년 광주고등법원의 전두환 회고록 제2차 출판금지가처분 결정문을 보면 전두환 회고록 속 ‘시위대가 먼저 계엄군을 공격해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격했다’는 표현이 ‘허위사실’이라고 적시된 바 있다. 이에 4년의 시간을 들인 조사 결과가 과거 법원 판결보다 ‘후퇴’했다는 지적이다.
●‘게엄군 오인사격 사망’ 진상규명 불능 결정
‘군과 시위진압에 투입된 경찰의 사망·상해 등에 관한 피해 과제’와 관련해서는 계엄군 상호 간 오인교전으로 사망한 부분을 일부러 축소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계엄군들이 오인사격에 의해 사망·상해를 입었다는 기록이 존재함에도 목격자 등 참고인에 대한 대인조사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발생한 권용운 일병 사망 사건은 과거 광주고등법원 판결에 의해 ‘계엄군 장갑차 후진으로 인한 역과형 사망’임이 명확히 밝혀졌음에도 조사위는 ‘시위대 장갑차에 치여 사망했다’는 주장을 여과 없이 기재했다.
김정호 전 민변 광주지부장은 “군·경 피해에 대한 보고서는 514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뤄졌음에도, ‘국민통합’이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왜곡의 소지만 제공했다”며 “해당 보고서는 전량 폐기돼야 한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암매장 사건을 진상규명 불능 결정 내린 것도 결과적으로 ‘암매장이 없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다.
암매장을 지시·실행 또는 목격한 24명의 계엄군 진술 확보 등에도, 항쟁이 끝난 후 다시 암매장된 시체를 재수습해 유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을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 낸 것은 오판이라는 것이다.
또 23일 주남마을 뒷산에서 즉결 처형·암매장 된 후 2001년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밝혀진 채수길, 양민석씨와 광주교도소 야산에 묻혔다가 29일 발굴된 서만오·최열락씨 역시 암매장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 전 지부장은 “민간병원이나 국군병원 등의 영안실에 안치하지 않고 야산 등에 묻은 행위는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게 하는 것이므로, 사용된 용어와 관계 없이 암매장이라고 평가해야 한다”며 “이미 암매장이 있었다는 사실은 밝혀졌는데,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으로 암매장이 없었던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사위보고서 왜곡·폄훼 빌미 제공
이날 조사위의 보고서가 5·18 왜곡·폄훼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이에 ‘불능’ 용어 변경, ‘계엄군 진술 비공개 또는 폐기’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경섭 5·18기념재단 5·18진상규명자문위원회 자문위원은 “발포, 무장, 왜곡 등에 대해 ‘불능’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진실규명 할 수 없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미해결’, ‘미규명’ 과제 등 표현 방법에 대해 의견수렴을 거쳐야 한다”며 “후속 조사도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전 지부장은 “조사위는 5000페이지에 달하는 계엄군 진술을 보고서에 담겠다고 했다”며 “어떤 진술을 신뢰할 수 있는지 최소한의 가치판단조차 하지 않은 ‘오염된 진술’을 비롯해 왜곡된 조사 결과는 비공개 또는 채택 거부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노병하 전남일보 정치부장은 “군경피해 사건 등 왜곡된 조사 결과를 종합보고서에서라도 수정할 수 있도록 언론을 비롯한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목소리와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