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부실투성이 ‘5·18 진상조사위 보고서’… 거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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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부실투성이 ‘5·18 진상조사위 보고서’… 거센 비판
민변 등 관계기관 검증·평가 보고
‘계엄군 자위권 뒷받침’ 오류 속출
법원 인정 사안도 규명불능 결론
“군경피해보고서 전면 폐기해야”
  • 입력 : 2024. 03.25(월) 18:29
  • 노병하 기자 byeongha.no@jnilbo.com
5·18기념재단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등이 25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5·18 조사위보고서 평가 및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나건호 기자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가 4년 여간 활동한 결과물인 ‘직권조사 개별조사보고서’가 발포명령자 등 핵심 사안에 대한 결론을 내놓지 못하는 등 부실 투성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보고서에서는 진상조사위의 최우선 규명 과제인 발포 명령자와 암매장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것은 물론, 군경피해 부분에서의 왜곡, 명백한 사실이 확인된 사건임에도 ‘진상규명 불능’ 결론을 내리는 등 기존 조사 내용이나 법원 판결보다 후퇴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군경피해 보고서와 관련해 광주지역 단체들은 “일방적인 왜곡으로 점철된 ‘군경피해 보고서’는 폐기해야 마땅하다”면서 강력 항의하고 있다.

25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광주시, 광주시의회, 5·18기념재단,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오월정신 지키기 범시민대책위 공동주관으로 5·18 기념재단 대동홀에서 ‘5·18조사보고서 평가 및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정다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위원장(광주시의원)의 사회로 열린 이번 평가회는 김정호 전 민변 광주지부장이 ‘5·18조사위의 개별보고서에 대한 민변 검토의견서’를, 박경섭 5·18기념재단 5·18진상규명 자문위원이 ‘5·18조사위 개별보고서에 대한 의견과 최종보고서에 대한 제안사항’을 각각 발표했다.

김정호 전 지부장은 “보고서에는 중차대한 허점과 왜곡 허용 요소가 상당했다”면서 “보고서를 검증한 결과 광주시민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부분들을 여기서 짚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지부장과 박 위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심각한 왜곡 부분은 △시민들이 먼저 무장해 발포하니 불가피하게 계엄군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위권발동 차원에서 발포했다는 허위 △계엄군 장갑차의 후진에 의해 사망한 11공수 권용운 일병이 마치 시위대의 장갑차에 의한 공격으로 사망하여 이에 위협을 느낀 계엄군이 자위권 차원에서 우발적으로 발포했다는 허위 △군경피해시 명백한 오인사격을 시민군과 총격전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허위 등이다. 이외에도 보고서 전반에 걸쳐 장장 100여 페이지(검증 평가서 전체)에 달하는 오류나 의문점이 발생됐다.

김 전 지부장은 “1980년 5월21일 13시께 계엄군의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를 위와 같은 허위사실로 정당화하려는 왜곡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전두환 회고록 관련 재판에서 진상규명해 놓았는데, 5·18조사위가 오히려 진상규명된 내용을 판결문 보다 후퇴한 내용으로 왜곡시킨 저의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김 전 지부장의 말처럼 1980년 오월 당시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권 일병의 경우 전두환 회고록에 실렸고 이는 법원 판결에 의해 허위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보고서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지 않은 채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려 왜곡을 유발하고 있다.

이 사건은 신군부의 자위권 발동·대시민 집단 발포와 연계된 5·18 왜곡의 주요 뿌리 중 한 축이다. 그간 권 일병이 광주 시민들의 시위대가 몰던 장갑차에 치어 숨졌다는 신군부 측 주장과 계엄군 장갑차에 깔려 숨졌다는 진술이 뒤섞여온 탓이다. 신군부 측은 권 일병이 시위대 장갑차에 치어 숨졌다면서 자위권 발동과 대시민 집단 발포의 근거로 이용해왔다.

그러나 이는 지난 2022년 9월 14일 광주고법이 ‘전두환이 회고록을 통해 5·18을 왜곡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허위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판결에서는 ‘5·18 당시 계엄군의 대시민 헬기 사격이 없었고 권 일병이 시위대 장갑차에 치어 숨졌다는 전두환 측 주장이 왜곡’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김 전 지부장은 “이같은 왜곡 상당수가 ‘군경피해’쪽에 몰렸있었다. 명백히 오인 사격, 계엄군간의 총격전임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 불능’으로 규정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결론이 많았다”면서 “다른 부분은 수정하더라도 군경피해부분은 전면 폐기해야 함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군경피해 부분의 경우 당초 진상조사위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았던 부분으로 ‘넣지 말자’고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었지만 일부 위원들이 “진상규명과 규명불능 이외에 ‘불채택’은 법에 명시되지 않았다”면서 강력하게 밀어붙여 현 보고서에 채택됐다.

박경섭 자문위원은 “5·18 진상규명을 위해 출범한 5·18조사위가 오히려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왜곡의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는 이런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한다”면서 “반드시 해당 부분이 수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해당 보고서는 지난달 공개 직후부터 민변, 5·18 기념재단, 광주시의회, 오월단체 등이 검증에 나섰고 지역 5·18 전문 기자들도 참여해 종합 검증을 벌였다.
노병하 기자 byeongha.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