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서석대>DJ 기념식수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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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서석대>DJ 기념식수 동백
박간재 취재2부 선임부장
  • 입력 : 2024. 02.04(일) 12:24
박간재 취재2부 선임부장
반백년 전 쯤이다. 학교를 오가려면 면사무소 옆 가게를 지나야 했다. 용돈이 뭔지 모르던 때라 유리문 안에 진열된 과자는 그림의 떡이었다. 당시 최애식품이던 과자 ‘뽀빠이’는 언감생심이었다. 길에 떨어진 10원짜리 ‘눈먼 동전’을 줍는 일 외에는. 어느날 진짜 10원짜리 동전을 습득했다. 무작정 친구들과 가게로 내달렸다. 오도독 부서지며 입 안 가득 달콤함을 채워주던 그 맛. 어찌 잊을수 있으랴.

붉은꽃이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다. 그 집 화단엔 아담한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동백이었다. 두껍고 짙은 녹색잎에 감자알 만한 꽃봉오리가 붉은색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아래엔 피지 않은 ‘아프게 부어 오른 듯한’ 꽃송이가 매달린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지금도 유채꽃, 라벤다, 진달래 등 꽃을 보면 가까이 다가가 선명한 색상을 감상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날 이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동백’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랬던 동백과 다시한번 이어지는 일이 생겼다. 더 정확히는 ‘동백의 수난사(본보 1월18일자 1면 DJ가 5·18민주묘지에 심은 나무 바뀐 까닭은)’쯤 되겠다. 당시 기념식수를 촬영했던 분이 올해가 마침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의 해이기에 그 장소를 찾았다가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1997년 당시 식재한 동백이 아님을 단박에 알아봤다. 식수한 자리엔 이파리 몇개 없는 어린 동백이 버티고 있었다. 나무가 말라죽자 다른 동백으로 슬쩍 바꾼 게 아닌가 의심했다고 했다. 확인해 보니 근처 매화동산으로 옮겨져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토질이 맞지 않아 시들어가는 바람에 옮겨 심었다는 게 민주묘지측 설명이었다. 하지만 나무는 살아 있으나 그 나무가 DJ가 심었던 식수임을 아는 자 몇이나 될까. 발상의 전환을 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옮겨 심은 후 안내판에 ‘1997년 5월16일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민주묘지 조성 후 최초 심은 기념식수로 고사위기에 처하자 현 매화동산으로 옮겨 심은 동백이다’라고 쓴 간판을 세워 스토리텔링 했다면 어땠을까. 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들이 DJ가 최초 심었던 식수장소를 둘러본 뒤 옮겨 심은 이 동백을 보러 매화동산으로 발길을 옮기지 않았을까. 매화동산 동백이 시그니처가 되고 포토존이 되지 않았을까.

세상이 하수상하다 보니 수준 낮은 정치인들에 대한 반감이 높다. 동백 한그루라도 소중히 보살피는 것도 위대한 정치인에 대한 후손들의 배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