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서구 매월동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 청과동에서 중도매인과 소매상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
●도매시장, 온라인 거래 시스템 활성화
![]() 광주 서구 매월동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 내 지정법인 호남청과에서 관계자가 온라인 거래 내역을 확인하고 있다. |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도매시장에는 유통업자인 중도매인과 소매상인 등이 당일 판매할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모여든다. 이들이 구매한 과일은 다시 한번 대형마트나 슈퍼마켓, 온라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판매된다.
하지만 이러한 도매시장도 비대면·온라인화 등 유통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다양한 유통 채널이 생겨나며 지역 농산물 유통의 핵심 기지였던 도매시장도 침체기를 겪으며 그에 걸맞는 경쟁력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 지정법인 ㈜호남청과는 지난 2022년 5월부터 온라인상으로 경매, 정가·수의매매가 가능한 온라인 거래 시스템을 지역 도매법인 중에서 최초로 구축, 시범 운영하기 시작하며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온라인 거래 시스템에서는 영농법인이나, 농산물 산지유통센터, 개별 농가 등 출하자와 중도매인, 매매참가인들이 참여하는 입찰식 온라인 경매와 정가·수의매매 등 온라인 거래가 모두 이뤄진다. 매일 아침 현장 경매에 참여하지 않아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도매법인이 보증하는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며 온라인을 통해 상품을 팔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시스템을 통해 직접적인 입찰이 이뤄지는 온라인 경매보다는 가격과 거래선을 특정해 놓고 거래하는 정가·수의매매 위주로 활용되고 있지만, 규모화·규격화된 산지와 매매참가인 확보, 대규모 물량을 처리할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하는 등 시스템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호남청과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거래 실적은 지난 2023년 12월25일 기준 약 77억원, 거래 물량 3700톤 규모로 1년새 크게 확대됐다. 2022년 온라인 거래를 포함한 정가·수의매매 등 전체 전자거래 금액이 74억원 규모였는데, 온라인 거래로만 전년도 거래 금액을 뛰어넘은 것이다.
김현유 호남청과 온라인거래사업부 총괄이사는 “온라인 거래 시스템 활성화를 위해서는 먼저 상품을 직접 보고 살 수 없는 특성이 있는 만큼 상호 간 신뢰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산지에서는 상품이 올바른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과대 포장을 지양, 상품 품질면에서도 꼼꼼한 검수가 이뤄져야 하고 상품의 규격화나 표준화, 하자처리 등에 대한 기준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광주 서구 매월동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 청과동 공판장에서 중도매인 고정효(51)씨가 당일 배송할 상품을 포장하고 있다. |
도매시장의 주축이자 유통을 담당하는 중도매인들도 온라인 거래처 확대 등을 통한 활로 모색에 나서고 있다. 빠르게는 온라인 판매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비대면 문화 확산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최근 3년까지 온라인 업체와의 거래에 집중하고 있는 중도매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날 매월동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만난 중도매인 고정효(51)씨는 매입하는 물량의 70%를 온라인 업체와 거래하고 있다. 고씨 역시 기존에는 오프라인 소매상과의 거래가 대부분이었지만, 7년 전 우연히 접하게된 온라인 업체와의 거래를 시작으로 가능성을 엿본 뒤 지금은 도매시장 안에서도 가장 많은 온라인 업체와 거래하는 중도매인으로 꼽히고 있다.
고씨는 “온라인 플랫폼들이 많이 생기면서 처음에는 우연한 기회로 거래를 하게 됐는데,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온라인을 통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다 보니까 경쟁력이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 본격적으로 온라인 업체와 거래에 집중하게 됐다”며 “온라인 업체측에 물건만 구매해서 보내주는 경우가 있고,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판매, 마케팅 업무만 진행하고 직접 소포장을 해서 소비자에게 보내는 형태로 나뉘는데 최근에는 후자의 경우가 많이 늘어나 소비자에게 상품을 직접 보내는 업무가 늘어난 편이다”고 말했다.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면서 매입·매출 규모도 크게 늘어났다. 오프라인 거래보다는 많은 물량이 필요하고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만큼 하나의 상품에서 마진율은 적지만, 박리다매 형식으로 거래 물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기존에 15억원가량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23억원으로 50% 이상 증가했다. 이처럼 온라인 판매의 경쟁력을 확인하면서 과일류를 주력으로 거래를 하던 고씨는 최근 품목을 더 확대하기 위해 채소 경매에도 참여하고 있다.
고씨는 “3개월 전부터 오전 4시에 채소 경매에 참여하고 7시부터는 과일 경매에 들어간다. 오전 10시까지 전날 온라인 업체에서 주문받은 발주 물량이 들어오면 박스 접기부터 시작해서 오후에는 소포장 작업을 진행하는데 모든 작업을 마치면 오후 4시, 5시정도 된다”며 “남들보다는 좀 더 바쁠 수 있지만 소비자들에게 직접 물건을 보내야 하는 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에 힘든 줄은 모르겠다”고 전했다.
남들보다 빠르게 하루를 시작하는 고씨는 상품을 구매할 때도 다른 중도매인들과 다르게 2주 혹은 한 달을 앞서 움직여야 한다. 경매를 통해 먼저 물건을 구매하고 유통하는 오프라인 거래와는 달리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행사 일정을 미리 고지해야 하는 특성상 그 시기에 물량을 얼마나 유통할 수 있는지, 또 가격은 어느정도나 되는지 미리 예측하고 구매할 시점을 정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씨는 “예를 들어 당근이라면 상품이 언제까지 수확되는지, 또 언제까지 물량이 충분히 많이 들어오는지, 가격은 오를 가능성이 큰지, 떨어질 가능성이 큰지 등을 경매사에게 매일 물어서 원하는 가격에 안전하게 구매할 수 있는 시점을 미리 체크해야 한다”며 “앞서가서 계획을 해두지 않으면 납품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중도매인 류상표씨의 경우 온라인 업체와 함께 3년째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5일 SNS를 통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판매의 가장 큰 맹점인 소비자들이 직접 상품을 보고 구매할 수 없다는 점을 파고들어 방송을 통해 다음날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을 직접 보여주고 당도를 확인, 시식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며 소비자들과 직접 신뢰를 쌓는 것이다.
류씨는 “처음에는 시청자 10명, 15명부터 시작해서 매출도 거의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방송을 하고 또 구매하신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지금은 밤 늦은 시간에도 라이브 방송을 켜면 많게는 2200명씩 시청을 한다”며 “라이브 방송만 통해서 하루 평균 2000만원 이상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아침 일찍 경매에 참여하고 일과 중에는 소매판매 등 거래도 해야 하지만, 밤잠을 포기하고서라도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는 이유는 역시 온라인 판매를 통한 경쟁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류씨는 “일단 대량으로 판매할 수 있고, 이는 곧 물건을 유치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온라인 업체와 같이 하면서 거래량은 40% 이상 확대됐고 매출도 30% 정도 늘어났다”고 전했다.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 출범… 과제도 산적
온라인 유통이 대세로 자리 잡은 만큼 정부도 최근 세계 최초의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을 출범하고 농산물 유통 분야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30일 출범한 온라인도매시장은 다양한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공간의 제약 없이 24시간 자유로운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구축한 온라인상의 전국 단위 시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온라인도매시장에서 상품 거래를 체결한 후 산지에서 구매처로 직접 배송을 통해 물류 최적화와 기존 대비 유통단계를 3단계에서 1~2단계로 단축, 유통비용이 절감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는 2027년까지 3조7000억원 규모의 시장으로 만든다는 목표인데, 이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먼저 온라인도매시장 운영의 법적 기반이 되는 ‘농산물 온라인 도매거래 촉진에 관한 법률’이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또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품목별 품질관리와 사전검수, 하자처리(A/S) 및 분쟁조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앞선 사례처럼 지역 도매법인에서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거래 시스템에 미칠 영향도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상황이다. 도매시장 관계자는 전국 단위의 온라인 도매시장의 출범으로 지역에서도 온라인 거래 시스템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장점이지만, 거래 플랫폼이 이원화되며 나타나는 파급력에 대해서는 아직 운영 초기인 만큼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김현유 호남청과 온라인거래사업부 총괄이사는 “일단 온라인 거래 시스템이 농가나 소비자에게 많이 알려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단일 법인으로서는 홍보에 한계가 있었는데 전국 단위의 온라인도매시장 출범으로 관심을 갖고 문의주시는 분들도 많이 늘어난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일각에서는 지역과 전국 단위 플랫폼 이원화로 우려도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시행 초기인 만큼 활성화 상황을 지켜보면서 발맞춰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시장 가격 결정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공하고 거래교섭력이 낮은 개별 출하주나 영세 농업인도 농산물을 원활하게 판매할 수 있도록 돕는 도매법인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다각화되고 있는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할지 지속적으로 고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