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정의롭고 숭고한 사랑… 베토벤 음악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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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전남일보]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정의롭고 숭고한 사랑… 베토벤 음악 '집대성'
<베토벤의 ‘피델리오’>
베토벤 전성기 작품 독일 오페라 정수
18세기 후반 스페인 주립 교도소 배경
풍부한 화성·완벽에 가까운 음악 ‘매력’
웅장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 색다른 풍미
  • 입력 : 2023. 12.21(목) 17:54
오페라 ‘피델리오’의 한장면.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을 ‘樂聖(악성)’이라고 부른다. 후대에 가장 추앙을 받는 음악가, 고전파 음악의 집대성자 베토벤은 하지만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오페라 작곡가로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초기 그가 작곡한 가곡 ‘아델라이데’나 ‘입맞춤’ 등을 들어보면 이탈리안적 수려한 선율에 깊은 감성을 자아내는 화성은 당시 민중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장르인 오페라를 성공적으로 제작했을 법도 한데, 그는 고전파 시대를 함께한 모차르트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는 유난히 모차르트 오페라를 싫어했다고 알려진다.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를 인정하지만, 그가 만든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에 대하여 저속하다는 표현을 종종 했다. 이는 모차르트 오페라 부파에 등장하는 노골적인 애정행각과 사랑 이야기가 저급하다고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사후에도 <마술피리>, <코지 판 투떼>처럼 애정행각과 주술, 그리고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가 판치는 오페라계를 지극히 보수적이고 고집불통이었던 베토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베토벤은 오페라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소재를 찾기 어려웠던 것으로 다양한 고전소설을 탐닉했던 베토벤은 휴머니즘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당시 상업적 목적으로 출간됐던 대부분 소설 중 그러한 내용을 찾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오페라 ‘피델리오’ 출처 뉴욕 메트로오페라극장
베토벤은 오페라에 숭고하고 엄숙하며 정의롭고 사랑이 가득차 있으며 그리고 영웅적인 내용까지 모든 것을 담고 싶어 했다. 그리고 드디어 1803년 베토벤에게 마음에 든 오페라 의뢰가 들어 왔는데 원작은 프랑스의 작가 겸 혁명정치가인 장-니콜라스 부일리(Jean-Nicolas Bouilly: 1763-1842)가 쓴 이다. 당시 빈의 궁정 극장 비서였던 요제프 존라이트너가 독일어로 번역했는데, 베토벤은 이 대본을 읽고 감동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 작품번호 72>는 1805년 빈, 안데르 빈 극장에서 초연했으며 이듬해에 재작업을 통해 3막을 2막으로 수정하여 올렸다. 이때까지 <피델리오>는 <레오노레>라는 작품명으로 공연되었으며 8년 후 1824년 다시 보완작업을 통해 수정하여 우리가 아는 <피델리오>로 완성을 하게 되었다.

<피델리오>는 억울하게 죄인이 되어 투옥된 남편을 아내가 남장하고 직접 구출해 낸다는 내용인데 피델리오는 여주인공인 레오노레가 남장했을 때 가명이다. 베토벤은 이 작품에서 정의가 승리하고 강한 부부애가 지금까지 자신이 찾는 소재였으며 특히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기 전 그의 혁명을 민중 해방이라 찬미하고 그를 위해 교향곡 3번 영웅을 작곡했듯이, 이 작품에서도 정의가 독재에 맞서 승리하는 부분에 크게 공감했다고 전해진다.

2020-2021 시즌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오페라로 공연된 ‘피델리오’.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피델리오>는 18세기 후반 세비야에서 몇 마일 떨어진 스페인 주립 교도소가 배경이다. 막이 오르고 교도소 마당, 간수인 자키노는 간수장 로코의 딸 마르첼리네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와 결혼을 서두르는 중이다. 하지만 마르첼리네는 신입 보조 간수인 피델리오를 남몰래 사랑하게 되었다. 피델리오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는 플로레스탄의 아내 레오노레이며 교도소장 피차로에 의해 구금된, 남편을 구하려고 남장을 하고 이곳에 은밀히 잠입한 인물이다. ‘남편을 향한 신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피델리오는 성실하고 일을 잘하는 모습을 좋게 본 간수장 로코 역시 자신의 딸과 맺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남편을 찾고 있는 피델리오는 늘 로코가 혼자 내려가는 지하 감옥에 자신의 남편이 구금되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신임하는 로코에게 자신도 지하 감옥에 함께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한편 교도소장 피차로는 법무 대신이 교도소를 시찰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하여 플로레스탄을 당장 죽이라고 로코에게 명령하고 피델리오는 이 대화 내용을 듣게 된다.

감옥이 배경인 오페라 ‘피델리오’.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2막은 지하 감옥으로 플로레스탄은 쇠사슬에 묶여있다. 그는 어두운 감옥에서 하루에 빵 한 조각과 물 한잔으로 연명하는 플로레스탄은 탈진 상태이며, 이러한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며 앉아 자신의 아내인 사랑하는 레오노레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때 피차로의 명령으로 로코와 피델리오라는 가명으로 남장한 레오노레가 플로레스탄을 죽여서 땅에 묻기 위해 지하로 내려온다. 그리고 레오노레는 수감 된 자가 자기 남편임을 확인하고 괴로워하고 주머니에서 빵 한 조각을 플로레스탄에게 건네준다. 플로레스탄은 변장한 레오노레를 아내일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이 낯선 젊은이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다.

곧이어 피차로가 감옥에 내려와 플로레스탄을 직접 죽이려는 순간, 레오노레가 피차로에게 권총을 겨누려는데 이때 법무 대신의 교도소 도착 팡파르가 울린다. 어쩔 수 없이 피차로는 연적 플로레스탄에 대한 처형을 뒤로 미루고 로코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가고 둘만 남은 부부는 안도와 기쁨을 함께 나눈다. 이어 법무 대신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던 수감자들을 풀어주고 실종된 자신의 친구 플로레스탄을 보고 깜짝 놀란다. 군중은 남편을 구하기 위해 기지와 목숨을 불사르는 아내 레오노레의 용기와 미덕을 찬송한다. 하지만 피델리오를 연모하던 마르첼리네가 실망하는 모습과 함께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와 피날레의 대합창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원작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지만 오페라에서는 스페인 세비야, 아프리카와 가까운 무어인들이 살았던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극의 배경을 옮겼다. 이유는 당시의 작품 검열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과 더불어 계급 사회 붕괴나 정치적 사항에 민감한 당시 집권 세력들은 민중이 사랑하는 오페라의 내용이 사회불안을 혹시 조장할까 두려워했으며 그래서 강력히 제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의 변방인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스토리 배경을 옮겨서 변방의 이야기로 치부 받아 검열을 피하려는 오페라 작품을 종종 볼 수 있다.

사랑의 힘으로 태어난 용기와 지혜로 남편을 구출한 레오노레! 해피엔드의 이 작품은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부파 오페라와 행복 결말이라는 점은 유사하지만, 극이 주는 재미는 여타 오페라보다는 덜하다는 평을 받았다. 극적인 긴장감도 떨어지고 너무 평탄한 대본의 진부함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독일어권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에 못지않게 주요 레퍼토리로 자주 올려지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베토벤 전성기에 완성된 곡으로 그가 표방했던 음악이 모두 집대성된 작품이다. 베토벤이 자신의 철학을 담은 풍부한 화성과 고집스럽게 수정하며 만든 완벽에 가까운 음악은 극적인 재미보다 또 다른 베토벤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레오노레 역의 소프라노 키츠와 플로레스탄역의 테너 트렙토프. 출처 위키피디아
<피델리오>를 베토벤의 아픈 손가락이라 부른다. 그의 유일한 오페라이지만 명성답지 않게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 오페라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보여지는 극적 수려함보다 귀로 웅장하고 짜임새 있는 음악에 취하고 싶다면,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고 풍성한 화성에 빠지고 싶다면, 눈을 감고 오페라를 듣고 싶다면, 베토벤의 <피델리오>를 만나보라!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만든 <피델리오>는 여러분에게 색다른 오페라의 풍미를 느끼게 할 것이다.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한 장의 명음반 : 군둘라 야노비츠, 르네 콜로 등,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1978년 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