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정선엽 병장 죽음 헛되지 않았음 느껴 큰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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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형 정선엽 병장 죽음 헛되지 않았음 느껴 큰 위로”
● 동생 정규상씨 인터뷰
‘서울의 봄’ 조민범 병장 실제인물
영암출신…조선대 재학 중 군입대
‘오인 총기사고’ 조작…전사자 인정
내일 모교 동신고 기념 식수 찾아
  • 입력 : 2023. 12.10(일) 18:29
  •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
전두환 신군부의 12·12 반란 당시 반란군과 대치하다 목숨을 잃은 고(故) 정선엽 병장의 동생 정규상씨.
전두환 신군부의 12·12 반란 당시 반란군과 대치하다 목숨을 잃은 고(故) 정선엽 병장.
전두환 신군부의 12·12 반란 당시 반란군과 대치하다 목숨을 잃은 고(故) 정선엽 병장.
“이제는 세상 사람 모두가 알지 않습니까. 형님의 죽음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요.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지난 9일 고(故) 정선엽 병장의 동생 정규상(64)씨는 본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암출신으로 광주 동신고를 졸업하고 조선대 재학 중 군 입대한 정 병장은 ‘12·12사태’ 당시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숨졌다. 최근 화제가 된 영화 ‘서울의 봄’에 등장한 ‘조민범 병장’의 실제 인물이기도 하다.

정씨는 12월12일이 다가올 때마다 형의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올해는 ‘서울의 봄’ 개봉으로 ‘12·12사태’와 그 주요 인물들이 회자되고 있어 더욱 가슴이 아프다.

정 병장은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1979년 12월13일 새벽 국방부 지하벙커 초병 임무를 수행하던 중 반란군 세력과 교전을 벌이다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제대를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당초 정 병장 후임이 지하벙커에 배치됐으나 정 병장이 벙커 초병을 자원했다. 정씨는 ‘자상하고 책임감 있는 형이었기에 후임을 앞세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정씨는 “형은 가족과 친구, 지인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었다”며 “부모님이 저를 농사를 짓게 하겠다며 중학교에 보내려 하지 않자 광주에 있던 형이 집(영암)으로 와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줬다. 그만큼 성품이 인자하고 자상했으며 남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었다. 형이 후임 대신 스스로 지하벙커에 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정 병장에 관한 내용이 밝혀진 건 최근의 일이다. 당시 군 당국은 정 병장 죽음을 ‘오인에 의한 총기사고’로 덮었다. 정 병장이 ‘전사’가 아닌 ‘순직’ 처리된 연유다.

정 병장 사망 43년이 지난 지난해서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현장에 있던 동료들의 진술을 토대로 “군사반란 세력을 상대로 정당한 직무집행 중이던 초병이 총격에 의해 사망에 이른 사건”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전사자’로 인정받게 됐다.

정씨는 “가족들이 나서서 정부에 따지고 규명하는 일은 불가능 했다. 위원회의 조사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형의 죽음은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을 것”이라며 “전사자 인정 소식에 온 가족이 한달음에 서울로 올라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형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제야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여전히 ‘한’으로 남아 있는 부분도 있다. 전두환 등 군사 쿠데타 책임자들의 사과를 듣지 못한 일이다.

정씨는 “책임자들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사과 없이 세상을 떴다는 게 안타깝고 참담하다”며 “사과 한마디 못 들은 게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12·12 반란 당시 반란군과 대치하다 목숨을 잃은 고(故) 정선엽 병장의 전사확인서.
정씨는 이제 형의 ‘명예회복’만이 유일한 바람이다. 다행히 최근 형 모교인 조선대에서 명예졸업장 추서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 병장은 조선대 전기공학과 2학년을 마친 후 입대했다.

정씨는 “아직 서울의 봄을 관람하지 못했지만 형의 이야기가 재조명되고 여러 곳에서 관심을 가져줘 영화의 힘을 체감 중이다”며 “똑똑하던 형은 끝내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명예졸업장 소식은 몇 년 전부터 들었는데 이제 진행된다니 기쁘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명예회복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씨는 동신고 총동문회와 오는 12일 정 병장의 모교를 방문한다. 동신고 총동문회는 지난 2017년 교내에 정 병장을 기리는 소나무를 심어 추모하고 있다.

정씨는 “최근 동신고 총동문회로부터 ‘12월12일 식수를 방문하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동신고에 형을 기리는 나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찾아가는 건 처음”이라며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곳이자 형이 머물던 광주를 찾게 돼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 시민을 비롯해 나와 같은 아픔을 지닌 5·18 유족들도 그들의 ‘의로운 희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