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환 논설실장 |
김대중 정부 출범 첫 해인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광주에 광산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며 5000억 원을 산업자원부 예산에 반영했다. 하지만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선심성 예산’이라며 전액 삭감을 요구했다. 이때 박광태가 반대를 주도한 경남의 한 의원을 복도로 불러내 ‘전라도에 뭔 원수진 일이 있냐’며 정강이를 걷어찼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예결위가 정회되는 소동을 빚었지만 박광태의 사과로 예산안은 통과됐다. 지금 광주의 주력산업인 광산업이 박광태의 ‘막무가내’가 만들어낸 성과인 셈이다.
박정희 정권 때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박광태는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면서 정치규제를 당했다. 군사 정권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1984년 해금되면서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공천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주 북구 갑 선거구에서 당선된 이후 16대까지 내리 3선에 성공했다. 광주시장도 두 차례 역임했다. 2019년에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 사장으로 취임해 GGM의 안착에 기여했다.
박광태 광주글로벌모터스 초대 대표이사가 4년의 임기를 마치고 지난 6일 퇴임했다. 그는 4년여 동안 허허벌판에 공장을 세우고, 회사 설립 2년 만에 자동차를 만드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야말로 ‘막무가내 정신’이 만들어낸 신화다. GGM의 두번째 도약을 위한 전기차 개발도 마무리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위탁 생산기업을 염원했던 박광태의 꿈은 오로지 ‘광주의 발전’에 있었다. 언론을 두려워하고 시민을 무서워 했던 박광태. 시민을 위한 것이라면 언제든 저돌적으로 나섰던 박광태의 ‘막무가내 정신’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