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효 광주FC 감독이 지난 9월1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하나원큐 K리그1 2023 30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앞선 가운데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자 포효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이정효 감독은 지난해 광주FC의 K리그2 우승을 이끌며 감독상을 수상한 뒤 “광주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광주 선수단과 저는 큰 꿈을 안고 K리그1에 도전한다. 내년에도 큰 성원과 응원을 부탁드린다”며 소감을 대신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개막 미디어데이에서는 “광주만의 색깔을 내겠다. 소신을 꺾지 않고 우리 색깔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각오다”며 “잔류가 목표가 아니다. 개막전부터 광주의 축구가 어떤지 알리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흙수저의 꿈’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1부리그에서 가장 적은 예산으로 선수단을 꾸린 팀이 상위권 경쟁을 펼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광주를 ‘4강 후보’로 선택한 감독은 전무했다.
이 감독은 ‘강등 1순위’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개막전에서 수원삼성을 상대로 1-0 신승을 거두며 돌풍의 시작을 알렸고, 올 시즌 16승 11무 11패(승점 59)를 거두며 구단 역사상 1부리그 최다 승리와 승점 기록을 모두 경신했다.
또 구단 역사상 최초로 1부리그 전 구단 상대 승리를 거뒀고, 최종 성적 3위에 오르면서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엘리트 플레이오프(ACLE PO) 진출권까지 획득했다. 승격 직후 이뤄낸 시민구단의 쾌거였다.
이정효 광주FC 감독이 지난 9월3일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울산현대와 하나원큐 K리그1 2023 29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강하게 질책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이 감독은 시즌 최종전에서 “올해 광주의 돌풍은 저 때문이다. 당당하게 이야기하겠다”며 “선수들이 노력할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찾아내고 있다.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또 “승리를 위해 우리만 잘하면 된다. 내년에도 1부리그 팀들을 계속 때리겠다. 상대를 어디까지 끌어내릴지 항상 생각하고 있다”며 “내년에도 거침없이 하겠다. 잘 보이려 하지 않고 실력을 키우는데만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탄탄한 수비와 조직력 기반의 공격을 구사하는 ‘주도권 축구’를 위해 선수단을 철저히 조련했다. 훈련 과정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선수들의 움직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고, 지시를 수행하지 못하면 강한 질책도 가했다.
훈련에서 가장 좋은 컨디션과 적응력을 선보인 선수들을 실전에 투입했다. 이순민과 엄지성, 정호연, 허율 등 국가대표 자원들은 물론 아사니와 티모, 토마스, 베카 등 외인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경쟁을 통해 공정한 기회를 보장했다. 확실한 주전이 없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실전에 투입됐더라도 지시를 이행하지 못하면 즉각 불호령이 떨어졌다. 스스로 ‘경기장 내 분노 조절 장애’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90분 내내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강하게 지시를 내렸다.
이정효 광주FC 감독이 지난 4월16일 DGB대구은행파크에서 열린 대구FC와 하나원큐 K리그1 2023 7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4-3으로 승리한 뒤 팬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지난 9월 카카오톡 배경 사진을 토마스와 포옹하는 사진으로 설정했는데 현재는 골프채를 선물받고 미소 짓는 김경민의 사진으로 해뒀다. 상태 메시지의 수적천석(水滴穿石·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음덕양보(陰德陽報·남이 모르게 덕행을 쌓은 사람은 훗날 그 보답을 버젓이 받는다), 이청득심(以聽得心·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다) 역시 선수들을 위한 말이다.
이 과정에서 이순민과 정호연이 지난 4일 각각 K리그1 베스트 11과 영플레이어를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거듭나기도 했다.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발전하도록 도움을 줬다. 최고의 감독이다”고 말했다.
전술에 대한 욕심도 강하다. 이 감독은 박원교 분석 코치와 함께 클럽하우스 인근의 24시간 카페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광주 경기와 훈련 영상을 분석하면서 선수들에게 피드백을 주고 브라이튼과 아스널, 맨체스터시티 등 프리미어리그는 물론 고등학교와 대학교 리그까지 전술에 도움이 될만한 축구라면 모두 찾아본다.
이번 겨울 휴가 역시 반납했다. 이 감독은 곧 영국으로 출국해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현지에서 지켜보고 전술에 대해 연구할 계획이다. 영국에 다녀오면 1월부터 선수단을 소집해 이른 새 시즌 준비에 돌입한다.
새해 광주와 이 감독은 다시 한번 기적에 도전한다. 이 감독은 “새 시즌은 위기라고 생각한다. 상대 팀들도 우리를 철저히 대비할 것이고, ACL이라는 성과를 냈기 때문에 선수 이적 제의도 많이 올 것이다”면서도 “3위보다 더 잘하고 싶다. 떨어지지 않고 위로 가고 싶다. 훈련하고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한규빈 기자 gyubin.ha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