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박동실에서 김정호·송가인으로 판소리 일대다로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박동실에서 김정호·송가인으로 판소리 일대다로
372)일대다로(一帶多路), 판소리의 길
“시김새가 약간 닮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야기하기 기술에서 노래하기 기술로 전이된 판소리의 문법이 지금은 또 다른 장르와 방식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 입력 : 2023. 11.23(목) 12:48
동편제의 대가로 불리는 송만갑
남도발라드 가수 김정호
에세이 송가인이어라 표지
전남아트박람회 포스터
“단풍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았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되기까지 했던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앞머리다. 대개 인생의 두 갈래 길 혹은 여러 갈래 진로를 결정하는 일에 비유되곤 한다. 성경 마태복음 7장과도 연결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반대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이 그것이다. <시경>의 준대로(遵大路)나 <논어>의 행불유경(行不由徑)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모두 편법이나 불법의 지름길을 택하지 말라는 격언처럼 사용된다. 맥락을 살펴보면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사실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마땅히 가야 할 길 혹은 택해야 할 진로에 대한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디 사람의 일에만 국한되겠는가? 한 나라의 길, 세계나 인류가 가야 할 길 등 수많은 언설이 난무한다. 금세기 들어 이슈로 부상한 키워드는 중국의 시진핑 정부가 내놓은 일대일로(一帶一路)일 것이다. 신실크로드의 다른 표현이다. 중국이 서부 진출을 위해 제시한 국가급 전략이자 정책이다. 일대(一帶)는 하나의 띠(帶), 육상 실크로드를 말하고 일로(一路)는 해양 실크로드를 말한다. 2014년 11월 중국에서 개최한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제안된 개념이다. 나는 이를 판소리를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개념으로 분해하여 인용한다. 띠(帶)는 허리띠(革帶)와 같이 계보를 따라 전승해온 길로 상정하고, 길(路)은 물골(내 이론 중 ‘개옹론’을 참고)처럼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유무형의 길로 상정한다. 띠는 하나로 이어져 있으므로 일대(一帶)로, 길은 두 갈래 혹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으므로 다로(多路)라 한다.



판소리, 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 일대다로(一帶多路)로



판소리는 종묘제례악 다음으로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우리 음악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민간음악의 두 가지 큰 갈래 중 성악에서는 판소리를, 기악에서는 산조를 으뜸으로 친다. 한국전통음악의 우두머리를 차지한 판소리와 기악은 명실상부 ‘남도음악’이 중심이다. 그 세세한 내력에 대해서는 지난 내 칼럼들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왜 여러 장르의 음악 중 남도음악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는가를 얘기해두었다. 본래 삼남(충청, 전라, 경상)이던 남도의 개념이 광주전남으로 수렴되었고 삼남의 곡창지대가 경제적 토대를 형성했으며 이 기반이 음악의 발전을 추동했다는 것이 내 논리의 주된 항목들이다. 이것이야말로 지난 1세기에 일어난 가장 괄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말해왔다. 판소리의 생성과 발달사가 이를 말해준다. 판소리는 본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안된 음악 방식이었다. 판소리의 내용이 모두 고전소설이나 옛이야기를 바탕삼고 있다는 데서 이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이야기를 여러가지 방식으로 전달하던 예컨대 전기수(傳奇叟) 등의 방식이 점차 음악적으로 세련된 풍경으로 바뀌었다. 충청도 중심의 ‘중고제’를 판소리의 시원으로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판소리 발전사를 한 문장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옛이야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음악적 방식이 고안되었고 이것이 충청도 중심의 중고제로 형성되었으며 점차 조선 후기 권력층의 이데올로기를 탑재한 전라도의 ‘동편제’ 스타일로 바뀌고 일제강점기를 전후해서는 시대의 아픔을 좀 더 공명하는 방식의 ‘서편제’로 이행하게 되었다. 여기에 목숨 걸고 판소리의 발전을 도모한 남도의 무당 출신들이 있고, 대원군 이하응의 그늘아래 발아했던 진채선을 필두로 한 여성 소리꾼들이 있다. 판소리의 기원이 무가(巫歌)나 무당에 있다는 설이 오랫동안 주장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중고제, 동편제, 서편제로 이행한 판소리는 다시 김소희 중심의 ‘만정제’, 김연수 중심의 ‘동초제’, 정응민 중심의 ‘보성소리’ 등으로 재편되었다. 분석하는 이들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대개 이 흐름을 판소리라는 정체성이 승계되어온 하나의 띠(帶)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부가할 수 있는 것이 이른바 창작판소리다. 고창사람 신재효(1812~1884)가 만년에 개작한 판소리 여섯 마당 외에 새로 창작했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전하여 내려오는 판소리가 아니라 독창적으로 지어낸 판소리’라 풀이한다. 전하여 내려오는 판소리라 함은 신재효가 정리한 여섯 마당,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흥보가), 토별가(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를 말한다. 창작판소리는 일제강점기 박동실에 의해서 창안되었다. 유관순전, 이준열사전, 안중근전 등 항일열사의 일대기를 다루었기에 ‘열사가’라고 한다. 이는 박동진의 ‘예수전’ 등으로 이어지고 임진택의 ‘똥바다’나 ‘소리 내력’ 등으로 이어진다. 이후 여러 창자들에 의해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재효는 판소리의 4대 범례를 ‘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로 정리한 바 있다. 이 문법에 따르면 창작판소리도 하나의 허리띠 즉, 일대(一帶)에 연결된다. 하지만 박동실의 내면적 승계자 김정호나 내가 남도트로트라고 장르를 명명한 송가인에 이르면 해석이 분분해진다. 일본의 대중가수 하지메치토세(元ちとせ)를 시마우타(島唄)가수 즉 민요 가수라 부르는 예에 견주어, 나는 김정호나 송가인을 판소리의 또 다른 문법을 승계한 사례로 분석하고 그 전통을 말해왔다. 판소리 등 전통 성악을 전공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다양한 컨템퍼러리 음악의 문을 두드리는 현실을 전제하는 맥락이다. 시김새가 약간 닮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야기하기 기술에서 노래하기 기술로 전이된 판소리의 문법이 지금은 또 다른 장르와 방식으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도인문학팁

판소리 일대다로(一帶多路), 틈으로 난 길 혹은 아직 가지 않은 길



일제강점기 박동실은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을 ‘열사가’라는 창작판소리를 통해 구현했다. 내용은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것이었지만 전통적인 판소리문법에 충실한 방식을 택했다. 박동진은 ‘예수전’을 통해 예수 일대기를 판소리 문법에 담아냈다. 임진택은 김지하의 담시를 시작으로 장보고, 윤상원, 정약용 등 십여 편에 이르는 판소리를 창작했다. 모두 판소리문법에 충실한 방식이다. 하지만 박동실의 손자 김정호나 남도 당골의 후손 송가인은 전혀 다른 계열에서 판소리 문법을 승계하였다. 1974년 혜성같이 나타난 김정호에게 딱히 붙일 이름이 없어 ‘발라드 문법의 포크팝 계열 뮤지션’이라 했다. 송가인에게는 내가 ‘남도트로트 가수’라 이름 붙였다. 판소리를 흔히 이면(裏面)의 음악, 성음놀이의 음악이라고 한다. 문법이 다른 듯 보여도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 정치한 시김새의 장착 등 성음놀이의 측면에서는 김정호나 송가인처럼 전통의 정서를 승계한 이들이 많다. 관련하여 틈으로 난 길 혹은 아직 가지 않은 길에 대해 강연할 기회가 있어 소개해둔다. 2023 전남아트박람회, 오는 11월 27일~29일 여수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라이징스타 현장오디션, ART061 미술경매, 문화예술 콘텐츠부스 운영 등 다채로운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나는 ‘판소리 일대다로(一帶多路)-박동실에서 송가인까지’라는 제목으로 전남문화예술브랜드 R&D 토크쇼에 이경엽 교수, 정순임 명창과 함께 참석한다. 전남문화재단 주관, 남도에서 처음으로 마련되는 예술박람회이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