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112-4>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광주 푸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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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112-4>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광주 푸른길
조동범 전남대 조경학과 명예교수·(사)푸른길 상임이사
  • 입력 : 2023. 11.05(일) 18:48
조동범 전남대 조경학과 명예교수·(사)푸른길 상임이사
1922년 광주에 최초로 기차가 들어오고 광주역(대인동 구 광주역)이 개역했다. 말하자면 지난해는 광주역 개역 100년이 되는 해였다. 도시 역사로 보면 기억하고 기념할 만한 일이지만 광주시민들 대부분은 모른 채 지나갔다. 아마 그 배경이라면 KTX도 들어오지 않고 여객이 급감해 썰렁해진 광주역의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도시 대표 역의 백세 생일이 무심하게 잊혀졌다는 사실은 서글프고 부끄러운 일이다.(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광주역장의 힘으로 기념자료집이 한정 부수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난 2000년, 광주역과 효천역 간 경전선 도심 통과 구간 10.8㎞가 폐선된 후 광주시 행정과 시민이 합심해 탄생시킨 푸른길 공원은 국내에서 철도 폐선 부지를 재생한 최초 사례로 타 도시에도 잘 알려지게 됐고 경의선, 경춘선, 수인선 등 다른 도시의 공원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차는 사라졌지만 푸른길은 기찻길의 기억을 ‘사람들의 길’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2021년 광주시민총회 의제로 선정된 ‘걷고싶은 도시 광주’와 관련해 지난해 광주시민 362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시민들은 광주의 가장 걷기 좋은 길로 푸른길을 들었다. 푸른길이 조성된 지 20년이 됐지만 아직도 푸른길을 모르거나 걸어보지 못한 광주시민들도 의외로 많다

그럼에도 광주 전역에서 푸른길이 걷기 좋은 길 첫 번째를 차지했다는 것은 여러 지역에 걸쳐있고 도심 주변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푸른길이 동구와 남구에 걸쳐 8.2㎞의 나무 숲길로 이어지며 단지 공원길이나 운동코스만이 아니라 도시 내의 일상적인 이동 루트 역할을 한다는 점도 발휘됐을 것이다.

푸른길이 도시녹지를 잇고, 사람들의 흐름과 만남을 이어 생태와 문화, 도시재생이나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도록 기대하는 것은 푸른길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꿈꿔왔던 것들이다.

하지만 푸른길은 아직 미완성이다. 도심 공원은 여전히 부족하고 녹지는 이어지지 못하며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과 도시 역사를 살리는 특징적인 도심 재생은 보이지 않는다. 늘어나는 자동차와 재개발 아파트로 도시의 흐름은 속도 위주가 되고 큰 블록으로 바뀌어 사람들의 만남 기회는 줄어들고 상권은 획일화된다.

아침저녁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은 안다. 1순환로를 경계로 안팎 200m 정도를 건너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도시철도 2호선 공사의 일시적인 이유도 있지만 도심과 외곽을 이어주는 통로가 1순환도로를 경계로 몰며 도심 또는 반대 방향으로 병목 또는 싱크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푸른길은 1순환도로와 나란히 존재하며 다른 의미의 역설적 공간이 돼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관심하거나 알아채지 못한다. 혹시, 그 말이 이런 것은 아닐까 상상한다.

“푸른길을 따라 공원 주변에 환승주차장을 확보해서 도심까지 차를 끌어들이지 않고, 걷거나 자전거로 혹은 도심 내 친환경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교통 문제도 해결될텐데… 도심 재개발은 보행통로나 자전거 전용로를 사이 사이에 넣어 푸른길과 숲길로 이어지면 기분 좋은 녹색의 출근길이 되지 않을까?”

이미 확정된 도심의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광주역과 송정역 간 광주선 11.1㎞에 2단계 푸른길을 이어 22㎞의 온전한 푸른길을 완성하는 것이다.

제3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따라 부전-순천을 기점으로 나주혁신도시를 경유한 경전선(KTX이음)이 계획될 때 달빛내륙철도 KTX와 통합 계획하면서 지하화한다면 더 보물 같은 푸른길이 지상에 열리게 된다. 공원과 연계해 주변이나 제방형 푸른길의 하부에는 공공주차장을 확보한다.

2단계 푸른길은 그저 단순히 푸른길을 잇는다는 상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푸른길이 광주시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길인 것처럼 어느 지역에서나 접근할 수 있고 도심 내외를 소통하는 환승 거점이 되며 광주역을 새로운 방식으로 되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 꿈이 저절로 완성될 리 없다. 20여년 전 철도 폐선 부지의 갈등을 풀고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로 만들어졌던 푸른길의 학습을 되살려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