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부 ‘정율성 사업’ 중단 권고… 광주시, 즉각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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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보훈부 ‘정율성 사업’ 중단 권고… 광주시, 즉각 거부
박민식 “국가 정체성 정면 배치”
남구·동구·화순군 등 시정명령
市 “지자체 자치사무…위법 없어”
“정부부처가 이념갈등 조장” 비판
  • 입력 : 2023. 10.11(수) 18:48
  • 김해나 기자 haena.kim@jnilbo.com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 권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가보훈부 제공
국가보훈부가 광주시가 추진 중인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을 권고하며 또 다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역에서는 특정 정파가 아닌 정부부처가 나서 이념 갈등을 조장해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11일 광주시에 정율성 기념사업 즉각 중단을 권고했다. 박 장관은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며 시정 명령을 발동했다. 국가보훈부 승격 후 지방자치단체 사무와 관련한 첫 시정 권고다.

박 장관은 이날 오전 용산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러 차례 ‘정율성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의 나팔수이자 응원 대장으로 우리 국민과 국군에게 총부리를 겨눈 적군이기 때문에 국민의 세금으로 이를 기념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음’을 강조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강기정 광주시장 등은 이미 20년간 진행해 온 사업이라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이에 국가보훈부는 지방자치법 제184조에 근거해 정율성 기념시설이 있는 광주시와 광주 남구, 동구, 화순군, 전남도교육청, 전남도 화순교육지원청에 시정을 권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은 존중하지만 대한민국 정체성 헌법 제1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물에 대한 기념사업의 설치·존치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며 지방자치법 제188조(위법·부당한 명령이나 처분의 시정)에 따라 시정 명령을 발동했다.

광주시는 보훈부의 권고를 즉각 거부했다.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등 기념 사업은 지방자치단체 자치 사무이며 위법사항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시는 이날 박 장관의 권고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지방자치법 제188조에 따르면 자치사무는 위법한 경우에만 주무부 장관으로부터 시정 명령을 받을 수 있다”며 “정율성 기념사업은 1988년 노태우 정부 때부터 35년간 지속돼 온 한중 우호 교류 사업으로, 위법한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지난 2018년부터 내년 초까지 정율성 생가(동구 불로동)를 복원하고 인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연계해 대규모 중국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으로 사업비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보훈부는 정율성이 1939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점,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인 ‘팔로군 행진곡’, 6·25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의 사기를 돋운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을 작곡한 점 등을 들어 그가 ‘중국·북한 영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역에선 정부부처가 나서 이념 공세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은 “나라를 위해 세운 공로를 인정하고 예우해야 하는 보훈부에서 독립투사를 편협한 시각에서 평가하며 오히려 기념사업에 훼방을 놓고 있는 것은 잘못된 행태”라고 지적했다.

김명진 김대중정부 청와대 선임 행정관은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은 우상화 사업이 아니다”며 “정율성은 14억 중국인이 좋아하는 한중 문화 교류의 상징이다. 문화 콘텐츠에 철 지난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는 행위가 오히려 시대착오적이다”고 지적했다.

김 전 행정관은 “박 장관은 국민 갈라치기 이념 공세로 정권 나팔수가 되려 하나”라며 “정율성 공원 사업은 광주시와 광주시민 집단지성의 결정에 맡겨놓고 자중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해나 기자 haena.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