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필영 시인 |
![]()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열차출발안내 전광판에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 여파로 중지된 열차 운행이 표시되어 있다. 철도노조는 오전 9시를 기해 1차 총파업을 종료했다. 뉴시스 |
이번 상황에서 국가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 본다. 국가의 목표는 국민이어야 한다. 단체도 국민을 배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양쪽이 자신들의 주장 관철만을 목표로 한다면 국민은 언제나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철도 민영화가 문제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번 파업의 이슈는 철도 운행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어느 부분은 민영화의 수순이므로 민영화를 반대한다는 내용이 중심이다. 정부는 처음부터 민영화 의도를 가지지 않았다면 명확하게 노조의 입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른 견해를 보이는 작금의 상황과 연결해볼 때 우리는 누구의 말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객관적으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조작된 선과 개인적 신념의 허위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령처럼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24살에 요절한 독일 작가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은 역사를 바탕으로 쓰여진 희곡이어서 정치와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파리시민들이 왕당파와 반혁명파를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감옥을 습격하여 무수한 사람들을 엿새동안 학살했다. 프랑스 혁명을 이끈 당통은 이를 부추켰거나 방관했다고 생각하여 양심의 갈등을 느끼지만 같이 혁명을 이끈 로베스삐에르는 당통의 온건한 태도를 공격한다.
로베스삐에르: 왕당파에게 자비를! 하고 외쳐대는 일부 인사들이 있소. 사악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안돼오. 무고한 사람들을 동정하고 약한자들, 불행한 자들, 인간다운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오.… 인간성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벌주는 일이야말로 자선행위라 할 수 있소. 이들을 용서한다는 것은 오히려 잔인한 행위요. (중략)
당통: 정당방위가 중지되는 지점에서 살인이 시작되는 법이라네. 더 이상 사람들을 죽여야할 이유가 없다고 보네.
로베스삐에르: …건전한 민중세력이 이 온갖 못된 짓을 하는 인간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물려받아야 해. 악덕은 벌을 받아야 하고 미덕은 공포로 다스려야 한단 말이네.
당통: 그 벌이라는 단어는 이해가 가질 않는군. 로베스삐에르, 자네의 그 알량한 미덕 말이네만, 그래, 자넨 돈을 챙겨 넣은 적도 없고 빚을 진 일도 없지. ... 항상 의복을 단정하게 걸친 채 술에 취한 적이라고는 없어. 로베스삐에르, 자넨 정말 무지막지하게 정직한 인간이야.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도 그렇게 30년 동안이나 한결같은 도덕의 탈을 쓰고 천하를 활보하지는 못하겠어. 그건 나보다 남을 더 나쁘게 보겠다는 고약한 심보에 불과해. 자네 마음 속에서 이따금 나직한 소리로 넌 자신을 속이고 있어, 넌 자신을 속이고 있단 말이야 하고 속삭여대지 않던가! (G. 뷔히너, ‘당통의 죽음’, 임호일 역, 한마당, 1993)
당통은 어떤 인간도 완전하게 선할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목적을 위한 위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선악을 계층적으로 보는 것이 정치적이라는 것도 물론 알고 있다. 결국 당통은 로베스삐에르에 의해 처형당하는 것으로 희곡은 끝난다. 역사는 공화국을 위한 로베스삐에르의 선택이 공포정치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기에 혁명가인 뷔히너는 진정한 인간다움을 위해 이 희곡을 썼을 것이다. 선한 가치를 추구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치나 신념보다 사람이 실재하는 현실이 언제나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