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타적 유전자·윤승태> 해양학자의 환경일기 ‘스물 다섯 번째 기록-호주의 남극 관문 도시 호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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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이타적 유전자·윤승태> 해양학자의 환경일기 ‘스물 다섯 번째 기록-호주의 남극 관문 도시 호바트’
윤승태 경북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부 해양학전공 조교수
  • 입력 : 2023. 09.06(수) 15:05
호주 호바트 항에 재현된 남극 탐험가 더글라스 모슨의 오두막. ‘모슨의 오두막’은 호주 남극 탐험대의 중요기지로 사용됐다. 모슨스파운데이션(MAWSON’S HUTS FOUNDATION) 제공
윤승태 조교수
지난 8월 14일~18일 호주 호바트(Hobart)에서는 남빙양 관측 시스템(Southern Ocean Observing System) 일명 SOOS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SOOS는 2011년 결성된 국제 네트워크로 남극을 비롯한 남위 60도 남쪽 해양에 대한 관측 및 연구 협력 체계로, 매년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연간 극지 보고서를 발간해오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 시대 이후 첫 오프라인 형태로 개최되는데다가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의 남빙양(Southern Ocean in a changing world)’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연구자들이 참석했다.

기후변화 그리고 극지 연구에 관심이 많은 필자 역시 지난 3월 ‘물범 부착 관측 자료를 통해 확인한 기후변화에 따른 로스해 반응 결과’를 학회에 제출했고 해당 연구가 구두 발표로 선정되어 이번 SOOS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남극을 비롯한 남빙양에 특화된 학회였던 만큼 국외의 저명한 극지 전문가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고 이들과 필자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도 보다 심도 있는 토의를 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최근 기후변화 영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남빙양의 모습을 물리, 화학, 생물학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SOOS 심포지엄 참석 덕분에 호주의 남극 관문 도시로 알려져 있는 호바트라는 도시를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것도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SOOS 심포지엄이 열린 정확한 장소는 바다가 바로 보이는 호바트 항구 앞의 그랜드 챈슬러 호텔이었는데, 호바트 항에는 거대한 호주 관측선들이 항구에 정박해 있었고 항구 옆에는 호주 남극 탐험가 더글라스 모슨(Douglas Mawson)의 오두막(hut)을 재현해 놓은 건물과 기념관이 있었다. 바다를 조금만 지나면 곧 남극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의 남극 관문 도시다운 모습이었다.

더글라스 모슨은 호주 남극 탐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지질학자이자 탐험가로 1900년대 초반 유명한 탐험가 중 한 명인 영국의 어니스트 새클턴과 함께 남극 탐험을 하고 1909년에는 남자기극에 도달했던 인물이다. 1911~1914년에는 호주 남극탐험대를 지휘하여 기사 작위를 받았고, 1929~1931년에는 영국-호주-뉴질랜드 연합탐험대의 대장으로 남극 탐험을 이끌기도 했다. 모슨의 이러한 남극 탐험 업적은 호주 남극 탐사의 시초로 여겨지며 호주의 남극 관측 기지 중 하나인 모슨 기지는 바로 이 탐험가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모슨의 오두막은 남극 탐험의 영웅 시대(1897~1922)에 건설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6곳의 장소 중 하나로 호주뿐 아니라 전세계 남극 탐험 역사 속에서 많은 의미를 지닌 장소이다. 그래서 호주 정부에서는 호바트 방문자들에게 탐험가 모슨과 호주의 남극 탐험 역사에 관해 교육하고 홍보하기 위해 모슨의 오두막과 동일한 모습의 건물을 짓고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남극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영토이지만 호주 정부에서는 모슨의 남극 탐험 역사를 근거로 남극대륙 가운데 일부를 자국 영토로까지 주장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남극 관문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에서처럼 호주의 남극 관문 도시인 호바트에서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남극에 대한 애정과 남극 탐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첫 남극 과학 기지인 세종기지가 1988년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우리나라의 남극 탐험 역사는 이들 나라에 비하면 매우 짧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 우리는 쇄빙선 아라온호, 세종기지, 장보고 기지 등 세계적인 극지 인프라를 구축했고, 이러한 인프라 덕분에 세계 속 국내 극지 연구자들의 위상 역시 매우 높아졌다. 2021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남극연구과학위원회(Scientific Committee on Antarctic Research·SCAR)의 의장으로 한국인(극지연구소 김예동 박사)이 선출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남극 탐험 역사는 짧지만, 남극 탐험의 중요성이 결코 다른 나라에 비해 덜한 것은 아니다. 위치상의 이점을 가진 호주나 뉴질랜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앞으로 우리나라도 더 활발한 연구 활동을 통해 남극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근 국가 R&D 예산 삭감으로 기초과학계가 위축되는 분위기인데 국내 연구자들이 미래 남극 연구의 구심점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극지 인프라 확충과 극지 연구 과제 개발 등에는 관심과 투자를 지속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