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정호 추진단 과장 |
자신이 만든 돌봄의 공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단속사회의 그림자를 도드라지게 했다. ‘가정 내’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제정된 ‘아동학대처벌법’이 그대로 학교현장에도 적용되면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는 아동학대의 가해자와 피해자, 행정공무원과 민원인 사이가 되었다. ‘똑바로 앉아서 칠판을 봐야지’하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교사들은 정서적 학대로 신고받는 처지로 내몰렸다. 아동학대 가해자로 ‘의심’된다고 신고되면 교사가 즉시 학생들과 분리조치, 직위해제 되는 문제, 그로 인해 학생들이 겪게 되는 피해는 고쳐지지 않았다. 일군의 교사들이 ‘교육 불가능’을 선언한 것도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 사이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은 더욱 치열해졌다. 일부 학부모들은 ‘성적은 내가 알아서 올릴 테니,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라’고까지 요구한다. 이런 학교에서 ‘독박’을 쓰지 않으려면 있는 문제도 모른 척하며 ‘각자도생’하는 수밖에 없다. 정당한 교육활동과 생활지도에도 불만을 드러내는 학부모들의 요구는 ‘악성민원’이 되고, 이제는 그 민원을 누가, 어떻게 떠맡아야 하는지가 새로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래도 ‘교육은 돌봄이 아니다’는 요구는 정당하지 않다. 오히려 돌봄이야말로 교육의 본령이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늘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다. 우리는 자신과 이웃, 사회를 돌보며 인격체로 성장해간다. 사회는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개인들의 집합이나 이들 간 계약의 산물이 아니라, 관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망으로 구성된다. 그런 관계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이 돌봄을 주고받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것이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뢰와 상호관심, 사회적 연결과 사회적 연대를 쌓아올리는 주춧돌이 된다. 교사와 학부모가 아이들을 함께 돌볼 때 교사와 학부모, 학생의 관계는 회복될 수 있다. 서이초 교사가 돌봄 공간을 만들어 아이들을 치유하려 하고, 결국 마지막까지 그 공간에서 끈을 놓지 못한 것도, 그런 관계 회복에 대한 바람이 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우리 또한 그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18-19세기의 자유민주주의는 공동체의 구속에서 벗어나서 각자가 제 할 일만 하면 비난받지 않는 ‘자유’를 추구했다. 그렇게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면서 공동체가 붕괴되고 결국 대공황에까지 내몰리고서야 ‘노동’의 가치를 중심으로 국가가 개입하는 사회민주주의가 등장했다. 하지만 노동 중심의 사회 또한 시장이 관계를 파괴한 것처럼 돌봄을 파괴하는 문제가 있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부리듯이 일부 노동자는 다른 돌봄 노동자를 부리며 무임승차하고, 우리 아이들은 돌봄을 맡기는 자와 떠맡은 자 사이의 위계를 보면서 자라고 있다. 돌봄민주주의는 이러한 위계질서에 저항하며 새로운 정치적 평등을 추구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사회를 물려주려면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과 돌봄을 제공하는 돌봄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이 아니어도 이웃을 돌보려는 사람들이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회에서 자라나는 학생은 타인의 돌봄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응답하는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서이초 교사의 49재가 있는 날 아침, 교육감을 비롯한 시교육청의 국과장들은 광주교육시민협치진흥원에 마련한 추모공간에서 헌화를 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퇴근후에는 도청 앞 5·18 민주광장에서 교사들이 추모집회를 갖기로 했다. 49재는 죽은 이의 영혼을 돌보는 의식이다. 혹은 그 영혼이 우리 ‘곁’에 남아 우리를 돌보았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편’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곁’을 지키며 서로 둘러앉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