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재호 교사 |
그런데 이 아이는 늘 자책합니다. 어느날, 강한 타구가 중견수로 향했습니다. 2루타성 타구였습니다. S는 끝까지 쫓아 갔고 글러브에 맞고 공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감싸고,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공을 놓친것도, 실수한 것도 아니라고 말해줬지만, 계속 스스로를 향해 원망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후에도 몇번이나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다음 플레이가 중요하지 않을까? 2루 주자가 3루로 뛰는 것은 보이지 않고 스스로 벌을 주고 있으면 우리팀이 패배하지 않을까”라고 설득을 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더군요.
S를 지켜보면서, 교사들 집단을 생각하였습니다. 교사들이 S처럼 “자기에게 벌주기”에 익숙해진 집단이 아니었을까요?
누군가에게 화를 내지 못하고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직종이 교사입니다. 이는 나름 합리적 측면이 있는데, 교사가 교육해야 할 대상이 어린이나 청소년이고, 이들에게는 감정적인 조절을 하면서 돌봄과 지도를 해야 합니다. 노동환경 측면에서도 수업환경이나 교실이란 각진 공간에서 홀로 수많은 피교육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적절한 피드백과 협력을 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습니다. 그래서 뭔가 잘못되었으면 스스로 벌주기에 익숙할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무엇보다 ‘정치적 파산자’들로서 정치적 중립이란 미명하에 교사들의 힘을 원천 봉쇄한 국가의 시스템 문제가 가장 큽니다. 문제가 있으면 말을 하고, 해결을 해야 하는데, 말도 못하게 하고, 행동도 못하게 막아놓으니, 교사들은 화를 스스로 내는 것에 익숙해 있습니다. 무성한 뒷말들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처럼 나부끼지만, 교사들은 그렇게 세월들을 버텨냅니다. 간혹 화를 내는 이단아들-배이상헌 같은 이가 목소리를 냈지만, 대다수 교사들은 침묵했습니다. 진보교육감은 신고가 들어오면 즉각 교사를 직위해제하고 고발조치하였고, 진보적이라 자처하는 노동조합도 무성한 뒷말로 “화를 내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던 교사들이 스스로에게 벌주기를 멈추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서이초에서 젊은 교사의 비극이 자기 내면에만 감춰둔 분노를 자극합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처럼 이글대는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눈물과 연대의 목소리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좋은 징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S가 스스로 벌을 주다가 팀의 패배를 가져온다고 늘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이 스스로 벌을 주고 침묵속에 빠지면, 우리 공동체가 패배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S에게 저는 말했습니다. “너가 잘못하면, 내가 지적할거야. 차라리 날 미워하고 화를 내는게 우리팀에는 더 좋아”. 교사도 그렇습니다. 선생님들, 스스로 벌을 주지 마세요. 그리고 뺏긴 정치적 힘을 꼭 찾아가야 합니다. 9월4일 공교육 멈춤의 날은 바로 그 시작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