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광국 도의원 |
통일신라 시대에 영암에서는 국내 최초로 유약을 바른 시유도기를 만들어냈고, 신비로운 비색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고려청자는 강진을 으뜸으로 친다. 또한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나타난 무안 분청은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일본 도자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전남의 도자문화는 1942년 국내 최초이자 최대 생활도자업체였던 행남자기 창립의 근간이 되었고, 1960년대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최신 기계를 갖춘 공장들이 세워지며 생활도자기의 대량생산 기반이 마련되었고, 경제성장에 따른 국내 수요 급증과 해외 수출길까지 열리면서 전남은 명실공히 생활도자 중심지로 도약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중국산 저가 제품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전남 생활도자의 시장 경쟁력은 쇠퇴했고, 2000년대 이후엔 유럽산 명품 도자기에 밀려 극심한 경영난을 겪은 행남자기가 지난 2021년 상장폐지 되기도 했다.
그 사이 도자산업의 주도권은 완전히 경기도로 넘어갔다. 이천시는 여주시·광주시와 함께 ‘2001경기세계도자엑스포’를 개최해 관람객 606만명, 1조4700억원에 달하는 경제효과를 거뒀다. 또한 2005년 이천시에 도자산업특구가 조성되고 2009년에는 한국도자재단이 설립되면서 도자기 하면 이천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게 됐다.
최근 무안·강진·목포·영암 4개 시·군은 전남 도자의 역사적 가치 재정립과 세계화를 위해 ‘전남세계도자기엑스포’ 공동유치를 위한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용역에는 국제행사 승인 기준에 따른 대응 전략과 지역별 특성에 따른 박람회장 기본구상 등이 담길 예정이며 엑스포 예산 규모만 15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전남세계도자기엑스포가 관람객들이 찾아오는 성공적인 행사로 거듭나려면 역설적으로 ‘도자기’라는 주제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경기도는 2001년 엑스포의 성공 개최 이후 지금까지 격년제로 세계도자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자기라는 콘텐츠에 대중들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최근 관람객 수는 초창기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이는 더 이상 도자기에 대한 예술적 접근만으로는 흥행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관람객이 기존의 도자 엑스포와 비엔날레에서는 보지 못했던 더 새롭고 참신한 콘텐츠를 만끽할 수 있도록 다양성과 확장성을 가진 엑스포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남세계도자기엑스포’를 전통과 최첨단이 만나는 ‘전남세계세라믹엑스포’로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세라믹(ceramics)의 사전적 정의는 고온에서 구워 만든 비금속 무기질 고체 재료로 과거에는 주로 도자기나 유리 등을 총칭하는 말이었다면, 현대에는 이를 포함하여 우주항공·반도체·이차전지 등 최첨단 산업에 사용되는 소재를 포괄하는 의미로 확대돼 쓰인다.
한국세라믹기술원에서는 세라믹을 크게 전통세라믹과 첨단세라믹으로 분류하며, 도자기류는 전통세라믹, 반도체·우주항공산업 등에 쓰이는 소재들은 첨단세라믹에 속한다.
전남은 이미 전통세라믹에서 국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영암 시유도기, 무안 분청, 강진 청자의 역사성과 예술성은 말할 필요도 없고, 국내 도자기 생산업체 상위 10개 중 7개가 전남에 있다. 특히 무안의 생활도자업체들은 2021년 기준 37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천도자산업특구 전체 매출액 88억원보다 4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더불어 첨단세라믹 육성에도 집중하고 있다. 한국세라믹기술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호남권 첨단세라믹 매출액은 1조6400억원으로 2019년부터 약 9.2% 성장했다. 또한 전남도는 목포 세라믹일반산업단지에 세라믹산업센터를 두고 원료개발부터 장비·시제품 제작·마케팅까지 기업 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원스톱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이렇듯 전남은 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와 발전 과정을 거쳐 전통세라믹과 첨단세라믹을 융합시킨 세라믹 산업의 메카다. 도자기 엑스포를 최신 산업트렌드가 반영된 세라믹 엑스포로 범주를 넓혀 타 지자체에 넘겨준 도자산업의 주도권을 우리가 다시 가져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