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고·박용준> 학교에서는 정율성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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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기고·박용준> 학교에서는 정율성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박용준 자유역사교육자모임 국장·역사교사
  • 입력 : 2023. 08.23(수) 15:12
박용준 교사
광주광역시가 정율성 기념공원을 조성하려 하자 국가보훈부 장관이 철회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광주시장이 반발하면서 정율성을 기억, 기념하는 데 대한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정율성은 1914년 광주에서 출생했다. 전주 신흥학교를 중퇴하고 중국으로 가서 김원봉 휘하 의열단원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1938년 화북의 연안으로 이동하여 중국공산당에 입당,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신인 팔로군에 참가했다.

그는 연안 시절에 팔로군으로서 작곡한 <연안송>, <팔로군행진곡> 등 중국공산당의 찬가를 작곡했고, 이러한 공로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2009), 시진핑 주석은 그를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 창건 100대 영웅’으로 기렸다.

오늘날 정율성은 한국보다도 오히려 중국에서 더욱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의 생가 소재지 중 하나로 비정된 양림동의 동쪽 입구에는 중국의 청년단체에서 보낸 정율성의 거대한 흉상이 세워져 있다. 여기까지는 광주·전남 시·도민들에게 그나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정율성은 중국공산당원으로서 광복 이후 북한으로 가서 북조선로동당 및 조선인민군의 중추로 활동했으며, 한국전쟁 발발 이후 일시 귀국하였다가 ‘중국인민지원군’, 즉 중공군으로 다시 북한으로 가서 전선의 중공군 등을 위문하였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정율성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광주교육청의 지역사 교재인 『중학교 주제로 보는 한국사』(노성태 외, 광주광역시교육청, 2018)에서는 아예 해방 이후 정율성의 삶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으며, 대신 중국 정부 차원에서 정율성을 어떻게 기념하고, 중국 정부가 그에게 어떤 위상을 부여하였는지만을 강조한다.

또 『경상도 땅에서 싸운 남도 사람들』(2021)에서는 정율성이 ‘1950년 6·25전쟁 발발 직전 중국으로 건너갔다’고 하여, 북한군의 전면 남침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해당 교재에서는 ‘한·중 우호 인물로 우뚝 선 독립운동가, 정율성’이라는 제목으로, 그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일각에서는 정율성의 북한 내 활동을 문제 삼고 있지만, 해방 후 조선의용군으로서 그의 선택지는 사실상 북쪽밖에 없었다. 그가 북에서 보여준 활동은 음악 활동에 국한돼 있으며, 6ㆍ25 참전도 중국 국적을 지닌 문화인사로 참여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지역사 교육에서는 정율성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해석하기보다는, ‘지역 출신 위인’이라는 단 하나의 접근방식과 해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율성에게는 독립운동가라는 업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 정권 및 남침에 복무한 행적은 언제나 논란의 쟁점이 되어 왔다.

그동안 이런 논란거리를 애써 외면한 채 정율성에 관한 사업화에만 몰두한 결과, 이제는 정치적 공세까지 받게 되어 버렸다. 지역사 교육이 지역 출신 인물을 자랑하는 데만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