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연 교사 |
최근 유명을 달리한 서초구 초등학교 선생님의 기사는 캐나다 한인 사회에서도 주요 뉴스였다. 학생의 생활지도와 관련해서 학부모의 악성 민원, 과도한 개입 등으로 교사들이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우리와 달리 캐나다에서는 학부모가 학생의 생활지도 및 상담과 관련해서 담당 교사에게 직접 민원을 제기하는 일은 많지 않다고 했다. 교감 교장이 학부모의 1차 상담 대상자이고, 이 경우에도 상담 절차가 있어서 해당 교사 혼자 학부모 민원을 상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이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학부모가 교사를 상대로 성토하거나 따질 문제가 아니라 담당 교사와 교감, 교장을 포함한 학교 구성원들이 모여서 지혜를 모아 협의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려움이 없지 않겠으나, 협의회 등을 통해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스템에서 구성원들의 협조는 있겠으나 항의나 위협, 거친 표현들은 필요없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 교사는 학부모의 민원이 불편하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상적인 교육활동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경우도 많다. 자세한 상황을 균형있게 바라볼 수 없는 학부모의 처지에서 일방적으로 다른 학생들을 문제 삼기도 하고 교사의 처신이나 해결 과정에 대해 불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업과 생활지도를 담임교사가 주도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다. 무능력해 보이기 때문이다. 동학년군에서 아이들의 문제를 공유하고 있는 여건이라면 다행이겠다. 나같은 경우도 지난 7월 초, 항의를 하기 위해 찾아온 학부모님과의 대응이 불편해서 교감, 교장 선생님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흥분해서 학교를 항의방문하러 오시는 학부모님들의 경우 우선 들어주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교사는 당장 진행해야 할 수업이 있고, 돌보아야 할 학생들이 있다. 학부모의 의견을 두 세 시간 동안 들어줄 만한 여력이 없다. 교감, 교장 선생님이 학부모의 마음을 달랜 후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서로의 역할과 할 일, 서운한 점을 털어놓고 해결의 방법을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잘 마무리되었지만, 돌이켜 그때 교감, 교장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당사자인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법과 교사의 자격까지 운운하며 험한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을까?
애초 발단이 된 ‘아이의 문제’는 사라지고, ‘학부모와 교사의 감정의 골’만 남게 된다. 이게 뭔가? 교사는 교사대로 상처받고 모멸감을 느끼게 되고, 학부모 역시 해결되지 못한 문제에 혹을 붙여서 돌아가는 모양새가 된다.
우리는 어쩌다가 지금까지 학부모-교사-관리자가 함께 하는 중립적인 상담 시스템 하나 만들어 놓지 못했을까?
세상 모든 학교에는 규칙을 무시하는 학생과 이기적인 보호자가 존재한다.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학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건강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온갖 법과 매뉴얼로 통제하려는 시스템 말고 대화를 통해 교육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협의체가 필요하다.
“‘힘내’라는 말보다 ‘힘들었지?’ 말 한마디에 툭 풀어지는 마음.”
지난 6월 송파구 구청 직원 대상으로 열린 ‘마음 달램 문구 공모전’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어 1위에 선정된 말이라고 한다. 최근 악성 민원 등 잦은 감정노동과 폭염 비상 근무로 지친 공무원들을 격려하고자 기획한 공모전이라는데 최근 ‘교사 수난 시대’로 인기도 없고, 교권도, 자존감도 많이 떨어진 교육 현장의 교사들에게도 필요한 말이다. 오랫동안 교사 역시 ‘감정 노동자’로 살아왔다. 학부모는 교사를 믿지 않고, 교사는 불신의 토대 위에서 모멸감만 학습하는 구조라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