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43> 예술의 조각들, 도시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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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전남일보]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43> 예술의 조각들, 도시의 장면들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도시의 창작자들은 자신 만의 궤도에서 또 다른 방향을
찾기 위한 예술의 조형적 움직임들을 지속하고,
도시의 일상성과 예술이 접목되는 지점에서
작업의 유의성을 가지게 된다.”
  • 입력 : 2023. 07.02(일) 14:40
문창환 작 모델하우스/가변설치/2023.성남아트센터 제공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무분별한 고도성장과 급 변화 된 사회·문화적 정책에 따른 중앙과 지역의 알 수 없는 경계와 균열들은 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정착하여 살아가는 많은 도시 사람들의 기억을 다양한 방식으로 흐릿하게 만들었다. 1980년대 이후 국외 수출을 통한 국가 경제 성장이 급물살을 이루고 수출 규모가 계속 확대되었지만, 반면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오게 되었다. 1990년대 말, 좋지 못한 국내외 경제 상황으로 심각한 IMF 경제 위기를 정면으로 맞으며 정부와 기업, 그리고 온 국민들은 어려워진 한국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대한민국의 시대 및 사회적 분위기는 경제, 정치영역 뿐 만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까지도 흔들었다.

비슷한 시대적 배경을 겪었지만 서로 다른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해 온 광주광역시, 대구광역시, 경기도 성남시의 기획자들이 각자의 도시가 품은 지역성과 일상성 그리고 독자적인 예술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주목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예술을 리서치 하여 선보이는 최근 주목 된 전시 현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성남문화재단에서 주최 <뜻밖의 만남 : 인카운터> 전시는 지난 6월 27일부터 오는 7월 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갤러리 808 전시장에서 짧은 기간 동안 개최된다. 이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1980년부터 1990년 이후 출생하여 대한민국의 비슷한 시대와 사회적 상황을 마주했던 다른 도시의 청년 작가들로 구성되었다.

광주의 이세현 작가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증거로 포착한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거나 되짚어보려는 시도는 역사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회복하려는 시도와도 유사하다. 작품 <쌍상총>, <터전을 불태우다>에서 실제인 것 같으면서 상상의 모호한 장면을 포착하고, 의미로서 사건과 실제로서 현장성을 결합하여 극적인 효과를 보여준다. 설박 작가는 풍경에서 발견하는 장면들을 오묘하면서 깊은 먹의 성격과 생경한 이미지를 결합한 작품을 보여준다. 작품 <자연의 형태>시리즈에서 인공적이고 차가운 기하학적인 형태와 모호한 먹의 성질을 결합해 보여주며, 전통적인 재료의 성질을 현대적인 형태에 녹여냄으로써 먹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하였다. 김수진 작가는 생명체와 그것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관계성과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서로 공생관계이면서도 해가 되기도 하는 생명체의 모습이나 시간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는 자연을 포착하고, 바다와 산, 물 등의 자연의 변화와 상호작용을 풍경에 담는다. 문창환 작가는 건축물이나 주변 환경, 도시 구조에 새로운 서사를 덧입히는 작업을 한다. 작품 <화공동> 시리즈에서 흔한 도시 아파트촌에서 형성된 획일성과 전형성을 자신의 새로운 상상으로 미디어와 설치작품을 구현하여 재해석한다.

김수진의 회화 작품 ‘시간의 주름’과 정재훈의 조각 작품 ‘내가 사는 피부’. 성남아트센터 제공
경기도 성남의 권나영 작가는 도형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고, 도형은 공간을 유영하면서 규칙과 변화를 만들어 낸다. 바깥을 둘러싼 기하학적인 구조의 도형과 그 내부에는 변화하는 생명을 대비해 보여주는데, 다른 이미지의 이들은 서로 충돌하면서 새로움을 생성하는 공간을 만든다. 김시원 작가는 가족이나 사회에서 한 개인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을 개인사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 보편의 문제로 제시한다. 설치된 오브제와 물질의 구성과 움직임에서 상호 관계성을 추출한다. 이두현 작가는 캔버스의 용접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평면 회화를 입체화한다. 작가 스스로 보편적 일상이라 칭한 것들 가운데 일어나는 개인적이고 민감한 경험과 감정을 작품에 끌어내오며, 작품에서 서로 낯선 소재들을 충돌시킴으로써 예기치 않은 장면을 만들어 낸다. 조성훈 작가는 기이한 형태의 생명체나 가상적 상황을 형성하여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전복해 본다. 오랫동안 자연의 지배자로서 행세해 온 인간의 망상을 꼬집는 듯 인간이 형성한 위계적 질서를 허물고 작가의 희망과 상상으로 인간과 동물의 다른 관계를 그린다.

이원기의 회화 작품 ‘Mist 포항 신항만’과 김시온의 설치 작품 ‘온 곳으로 신호를 보내며’. 성남아트센터 제공
성남문화재단 신흥공공예술창작소 입주작가 ‘스튜디오 모든 사이(최다정·김지영·이서희)’ 팀의 ‘프로젝트 즐검, 뜰’. 성남아트센터 제공
이처럼 서로 다른 도시의 지역·환경적 특성과 문화적 요소를 새롭게 발견하여, 사회 경계와 관념 안에서 꿈틀거리는 일련의 탄력적 예술의 움직임들은 우리나라 지도 안에는 표식 되지 않은 또 다른 시공간의 가치를 발견하게 해준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도시의 창작자들은 자신 만의 궤도에서 또 다른 방향을 찾기 위한 예술의 조형적 움직임들을 지속하고, 도시의 일상성과 예술이 접목되는 지점에서 작업의 유의성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도시의 예술가들이 창의적이며 인지적 예술의 확산을 넘어 드러나지 않은 사회 공동체와 개인의 삶, 기억과 경험을 경유하며 새로운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불안정한 도시의 지형을 오랜 시간 상상해 온 것인지 모른다. 도시의 예술적 역할을 작업으로 구성하고, 또 다른 의미에 대한 서로의 다름과 닮음의 탐구적 시선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 교차시키는데 의미를 더해본다. 향후 도시의 인연이자 만남에서 시작 된 기획자와 예술가들의 시선은 내년에도 유동적으로 이어갈 전망이다.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도시의 공간적 특성, 시간의 흐름과 역사적 변화의 장면들의 기억을 담은 청년작가들 작품을 살펴본다. 광주광역시-대구광역시-성남시의 도시 속에서 느끼는 창작자의 시도와 감정들이 담긴 작품들로 공유되고 새로운 만남의 순간들을 전시장에서 예술적 감동과 일상의 감각을 일깨우는 만남으로 공유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