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문화향기·김강> 사회 담론으로서 5·18 묘비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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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문화향기·김강> 사회 담론으로서 5·18 묘비명 읽기
김강 호남대 영어학과 교수
  • 입력 : 2023. 05.30(화) 13:11
김강 교수
광주일보 2010년 4월 20일 자 1면에 ‘너무 지쳤다, 이젠 용서하고 싶다’라는 특집기사가 실렸다. 5·18 당시 동생을 죽인 계엄군을 쫓아 ‘30년’에 걸친 복수극을 펼쳤던 김무정의 사연이다.

그의 동생 김형진은 1980년 5월 23일 오후 3시경, 지금의 광산구 신촌동 송정치안센터 앞에서 모 부대 하사관의 검문 중 심한 폭력을 당했고, 3년 뒤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그와 다른 형제들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칼을 품고서 가해자를 추적했지만, “가장 고상한 복수가 용서”라는 생각에 마침내 뜻을 접었다. 기사에 따르면, 형은 동생의 묘비에 다음과 같이 썼다.

“김형진은 1980년 5월 23일 계엄군인 충남 부여 출신 포병학교 소속 신OO 상사가 대검으로 흉복부를 난자해 국군광주병원에서 수술 후 치료 중 1983년 11월 4일 사망했습니다. 오 하나님 다시는 이 땅에서 국민의 군대가 정권 찬탈의 목적으로 이용되어 국민에게 총칼을 휘두르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십시오.”

사실과 기원이 함께 서려 있는 이 비문은 그날 32세의 고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끔찍한 폭력의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매우 직설적으로 알려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문 혹은 묘비명은 이 같은 방식으로 죽은 자의 삶을 매우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혹은 죽음에 대한 유족이나 망자 자신의 수용 자세를 단적으로 표현한다. 우리의 경우 비문은 대개 깊은 산속에 고적하게 혹은 그저 묘지 앞에 공허하게 쓰여있다. 일반적으로 비문의 내용은 가족 외에는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으며 굳이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그저 나와 무관한 어떤 개인의 살아있을 적 행적에 관한 사적인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5·18 비문은 사뭇 다르다. 매우 사적인 영역의 감정을 드러내지만, 비문이 내포하는 사건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한 대목을 실제로 차지했기에 당연히 공적인 의미를 지닌다.

5·18 비문의 이러한 기능은 영화로도 개봉됐던 캐스린 스토킷의 소설 ‘헬프’의 주인공 스키터의 역할에 비유된다. 그녀는 1963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 소도시 잭슨에서 백인 중산층 딸이자 작가 지망생이다. 스키터는 도시에 잔재한 인종차별의 양상을 흑인가정부의 삶을 기록하여 책으로 펴냄으로써 주류 백인사회의 위선과 편견에 예리하고도 이해심 있는 비판을 가한다.

영화에서 스키터는 “구술사 채록의 전통”을 따른다. 이는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고 일컬어지는 역사에서 배제된 사회적 소수자, 민중의 목소리를 인터뷰에 담아내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 이전부터 흑인 노예들의 이야기를 적어 출판한 전통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5·18 비문은 ‘희생자의 기록’으로서 한국 민주화운동의 발자취를 미시사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채록 문헌’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주제와 문체를 지닌 비문을 통하여 희생자들과 유족들은 그들이 몸소 경험했던 시대를 설명하고 그 역사적 가치를 전달한다.

비문들은 또한 죽음에 대한 태도를 담고 있다. 대개 여타의 전통적 비문들은 실제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개인의 생애와 뛰어난 업적을 치장하는 데 주도면밀하다. 때로는 미화와 과장의 기술도 아끼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고인의 죽음에 대한 솔직한 평가와 수용이 아니라 과식체적이며 수사학적인 뽐냄의 도구이다.

5·18묘지의 비문들이 비극적이며 서글픈 심경을 담고 있는 것에 반하여 일반비문들은 웅변적이고 계시적이다. 5·18 비문들은 비극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지닌다. 본질을 부정하는 ‘드러냄’이 아니라 실체를 수용하는 ‘받아들임’이며, 희생자들의 생애는 ‘극적’이기보다는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참으로 ‘애국적’이다.

그와 같은 글쓰기가 정치적인 사건과 관련돼 있다면, 그 기록들은 이제 역사성과 정치성을 지닌 시대적 ‘다큐 문학’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5·18 비문들이 역대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의 오만한 회고록과는 달리 ‘역사적 교훈서이자 반성문’이 될 수 있음은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유사한 방식으로 페미니즘 비평가들이 억압적인 남성 중심사회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사회에 각인시키기 위한 매체, 다시 말해 사회적 성 평등과 해방을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로서 여성적 글쓰기를 강조하는 점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마르크스 문화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말처럼, 진솔한 기록은 그 기록이 생산된 시대의 선악을 여실히 드러내고, 아울러 그 시대를 향한 의미를 다시 제공하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21일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아들 대정이를 찾으러 가던 중 잿등에서 계엄군의 총에 가슴을 맞고, 80년 5월 27일에 계엄군에 붙들려 상무대 헌병대로 끌려가 모진 고문과 고통을 받은 후 석방되어 그 부상 후유증으로 1993년 3월 10일 운명하시다.

묘지번호 3-73 강해규의 비문이다. 이처럼 희생자들에게 5·18은 공포의 쓰나미였다. 그러나 비문은 희생자 각각의 고통과 슬픔을 찬찬히 들려준다. 비록 자신이 아닌 유족 등 타인이 남긴 글이지만, 5·18이 그의 삶에 어떤 것이었는지, 어떻게 삶이 바뀌었는지,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5·18이 살아남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은유적으로 말해준다.

필자가 ‘지역사회연구(28권 4호)’ 논문에서 상세히 분석한 바처럼, 5·18 비문은 43년 전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에 대한 역사적 팩트와 더불어 개인으로서 그리고 유족으로서 느꼈던 한, 슬픔, 분노, 화해, 극복, 초월, 기원 등의 인간적 정서를 진솔하게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인 동시에 ‘문학’이다. 권력의 입맛에 맞춘 ‘공식 자료’는 사실에 대한 가감이 불가피하지만, 비문은 주변적이며 비공식적이지만 오히려 실체에 대한 대안적 시각을 제공하는 정직한 사료이자 공적 유산이다. 따라서 그 상세한 텍스트를 광주민주화운동의 가치와 역사의식을 영구히 새기는 사회적 담론으로서 고이 간직해야 할 것이다.

“1980년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전남대 학생처장으로 재직 중, 세상에 바른 소리 밝히셨다. 후대를 위한 높은 뜻, 채 알리기 전에, 아! 주님께서 먼저 아끼시어, 영면의 안식을 내리셨도다.” 묘지번호 5-18, 애석하기 그지없는 나의 아버지의 짧은 생애다.

광주의 5월은 위령의 달이다.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심심한 조의와 평화의 기도를 바친다.